'북망즉통'(北亡卽統)…오뉴월 개꿈 같은 망상
7월 16일 조선일보가 단독 기사를 터뜨렸다.
쿠바 주재 조선(북한)대사관의 리일규 정무참사와 그 가족이 지난해(2023년) 11월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이면 한국과 쿠바 수교(2024년 2월)를 3개월쯤 앞둔 시점이다.
이러저러한 '탈북 동기'가 나오고 있지만, 한국-쿠바 수교를 막지 못한 데 대한 책임 추궁이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추측된다.
태영호 당시 영국 주재 조선대사관 공사의 탈북 이후 최고위급 외교관이라고 한다.
리 참사의 망명 사실은 그가 한국에 입국한 지 거의 8개월 만에 한국 정부 당국에 의해 공개됐다.
그간의 내 경험으로 비춰보면, 리 참사는 자신의 망명 사실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한국에 들어왔을 가능성이 크다. 망명자(탈북자)들은 대부분은 자신의 한국 망명이 공개되는 걸 극도로 꺼린다. 공개되면 조선(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 친지들에게 불이익이 갈 것이고 그것이 평생 한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 참사의 망명 공개는 태영호 민주평통 사무총장 임명과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이 때문인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태영호 사무총장 임명과 관련된 논란은 물 밑으로 깊이 가라앉아버렸다.
당국의 '언론 플레이' 또한 능란하게 이뤄졌다.
조선일보에만 '단독' 기사를 제공함으로써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하게 만들고, 조선일보의 특종을 타 매체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한국 언론계의 생리를 십분 활용했다.
조선일보 기사를 보면서 한 가지 눈에 띈 게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겠지만, 언론계 한 솥밥을 먹는 사람으로서 갖는 유다른 촉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망명'이라는 두 글지가 보이지 않는다.
망명(亡命)은 정치적, 종교적, 사상적 등의 이유로 자기 '나라'에서 박해를 받거나 박해를 받을 위험이 있는 사람이 이를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 몸을 옮기는 것을 말한다. '망명'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발생하는 외교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외신은 물론 일부 국내매체에서도 '망명'으로 썼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한국에 입국했다'고 했지 '망명했다'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조선(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분명한 사실이다.
반조(反朝.반북)세력의 최선봉에 서 있는 조선일보의 이같은 속성을 잘 아는 당국은 조선일보에 '단독' 기사를 던져줬다. 조선일보는 당국의 의도에 알맞춤하게 기사를 써줬다. 당국으로서는 환호작약했을 것이다.
조선(북한) 내부 엘리트 층의 동요가 심하고, 조선 인민들의 민심 이반이 심각한 수준이므로 '김정은 정권'의 몰락도 머지않았다, 조선을 강하게 압박하는 현 윤석열 정권의 통일 정책이 옳았음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여론이 형성돼 가고 있으니 말이다.
당국에서는 제2 망명 건도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파리 주재 조선대표부의 한 외교관이 사망했는데, 그 유골을 갖고 유족들이 제3국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아마도 미국이 아닐까 추정된다. 정부 당국에서는 이들도 한국으로 오도록 무진 애를 썼을 것이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이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조선(북한) 붕괴설'은 또 한 차례 회자될 것이다.
필자 생각이지만, 한국인들 99%는 '조선(북한)이 망하면 곧 통일 된다'고, 당연한 상식처럼 믿고 있다.
과연 그럴까.
대성동 마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파주 문산 쪽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민간인 거주 마을이다. 여기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의 4대 의무 중 납세와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조성되었으며, 유엔사령부의 민사 규정과 대한민국 법률이 공동으로 적용되는 지역이라고 한다.
여기서 간단한 의문이 제기된다.
납세와 국방의 의무가 면제된 대성동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인가.
대성동은 유엔사령부 관할구역인데, 대한민국 영토라고 할 수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방북할 당시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는데, 왜 유엔사령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가.
답은 간단하다.
남측 비무장지대의 관할권은 유엔사령부에 속해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는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다. 유엔사령부가 기실은 미군사령부이므로, 미국 땅, 미국 영토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또 한 가지 곰곰히 살펴봐야 할 게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라는 주장이다.
한국민 거의 대다수가 사실로 받아들이는데, 과연 이게 '사실'인가.
유엔이 인정한 것은 "현재 대한민국 정부가 관할하는 땅에서 유일 합법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라는 것"이다.
한반도 전체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붕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헌법 3조 영토조항이 존재하므로 자연스럽게 한국 땅이 될까.
헌법 3조는 한국만의 주장이지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사실이 아니다.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미국, 중국 등이 '그런 통일'에 찬동할까.
'엉클 샘'이나 '왕서방'이나 마음씨 좋은 이웃 아저씨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을테니 이쯤에서 그만 두는 게 낫겠다.
조선(북한)이 붕괴해서 북녘 땅에 통치 공백이 생겼을 때
한국이 헌법 3조를 근거로 북녘 땅까지 통일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북망즉통'(北亡卽統. 조선이 망하면 한국이 통일한다)은
오뉴월 개꿈 같은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 조선이 한창 '고난의 행군길'을 걷고 있던 때
북쪽에 자주 다니던 어느 목사님 말씀이 생각난다.
"난 북녘 동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 어려운데도 어쨌든 버텨나가잖아.
2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같은 동포니까 도와달라면서
남쪽 등에 찰싹 달라붙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남쪽이 감당할 수 있을까.
내 보기엔 남북 양쪽이 모두 수렁에 빠져
민족이 공멸할 것 같다."
이른바 조선의 엘리트층이 한국에 망명할 때마다
조선 붕괴설이 춤을 췄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고 있듯이
조선은 여전히 건재해 있다.
조선이 미구에 망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곧 통일이 된다는 건
한마디로 망상이다.
'반공 반북 키즈'들이나 꿈 꿀 법하다.
망상 위에 통일 정책을 세우다간
민족 전체를 참화 속으로 밀어넣을 게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