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일용 Apr 25. 2024

[홍시생각 9] 국보법, 단말마의 비명 내지르고 있다

김광수 이사장 국보법 위반 수사를 보며 

수구세력 참패로 총선이 끝난 지 10여일이 지난 4월 22일.

부산에서는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 소속 경찰관들이 한 시민단체 책임자를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벌이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다.


압수수색 대상은 '(사)평화통일센터 하나' 김광수 이사장의 자택과 사무실, 차량 등이었다.

영장에 기재된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및 회합·통신 등)이었고

이 영장은 서울중앙지법이 발부했다. 


경찰이 당초 문제삼은 것은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지난 1월 24일 개최한 긴급토론회에서 한 김 이사장의 발언.

김 이사장이 북한의 '정의의 전쟁관'에 동조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20개 시민단체와 함께 국회 의원회관 회의실에서  

'남북관계 근본 변화와 한반도 위기 이해–평화 해법 모색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 박사는 '북의 인식 변화와 평화통일 운동' 주제로 

조선(북한)의 대남노선 변화와 전쟁 관련 입장 등을 발표했다.

 

토론회가 열린 직후에는 잠잠했다. 1주일이 지나 뒤늦게 반북세력이 날뛰기 시작했다. 

명색이 국회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조선(북한)의 전쟁관에 동조하는 발언이 나왔는데도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냈다고 

먼저 반북언론매체들이 포문을 열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그 다음에는 반북단체들의 맹렬한 성토가 이어졌다. 

이어 김영호 통일부장관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지침을 내리듯 결론지었다. 

이에 따른 마지막 수순은 사법 조치 단계.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서울시의원 등이 나서 

김광수 이사장을 '고발'했다. 


이 글을 쓰다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종배 서울시의원의 갖가지 고발 경력이다.

 

총선을 앞둔 4월 1일 그는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박은정 후보가 배우자의 '전관예우 의혹'을 부인한 것과 관련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3월 18일에는 성명불상의 공수처 관계자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종섭 전 국방장관의 출국금지 사실을 최초 보도한 MBC에 공수처가 수사상 비밀을 알려줬다는 취지다.


지난해 12월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를 국고 손실, 횡령, 배임,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 의원은 고발장을 제출하며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에 대해 마녀사냥, 인민재판을 하고 총선에 유리하게 하기 위해 특검을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김 여사를 특검해야 한다면 김정숙 여사도 해야 한다. 그게 공정하고 형평에 맞다"고 말했다.


인터넷 매체 ‘민들레’는 이태원 참사(2022.10.29.)로 숨진 158명 가운데 155명의 이름을 같은해 11월 14일 유족 동의 없이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이튿날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민들레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언뜻 눈에 띈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다. 

내가 그의 '이름 알리기 술수'(노이즈 마케팅)에 놀아나고 있지 않는지.


별나다 싶은데, 고발 형식이 아닌 민원, 진정도 있었다. 

최근 그는 국민의힘 미디어국과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MBC가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공격을 두고 온라인판에서 미국을 공격했다고 잘못 보도했던 것과 관련해 민원을 냈다. 

지난해 11월 '암컷' 표현으로 논란을 일으킨 최강욱 전 의원에 대해 출당 등 재발방지 대책을 권고해 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시킨 것도 바로 이종배 서울시의원이었다.


잠시 샛길로 빠졌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김광수 이사장은 논란이 된 국회 발언에 대해 "북이 대남노선을 변경한 만큼 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다시 연방·연합 방식의 통일전략으로 되돌아올 수 있게 강제하자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조선일보의 해석대로) 북의 전쟁관에 동조하는 게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오마이뉴스 4.23.)


내재적 접근법으로 있는 그대로의 조선(북한)을 이해하자는 취지였을 뿐 결코 '동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자신을 북의 지령을 받는 간첩이나 반국가단체 구성원, 찬양·고무 인물로 규정했는데, 나는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라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북한의 정치·사상사가 전공인 김 이사장은 인제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경남대에서 각각 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련 연구와 함께 시민단체인 평화통일센터 이사장직을 역임해왔다.


경찰이 가져간 자료를 놓고서도 이해할 수 없단 반응을 보였다. 북한학 박사로 출간한 '통일로 평화를 노래하라', '전략국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책과 언론매체 기고문, 강연 자료 등이 대거 압수수색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 이사장이 강의한 대학 기말고사 답안지까지 목록에 올랐다.


그는 "책은 이미 출판사를 통해 시중에 판매되고 있고, 여러 자료는 석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모교인 북한대학원대학교 도서관에서 대출받아 합법적으로 복사한 것들"이라며 "이도 모자라 대학 강단의 강의 내용조차 사상 검열을 하는 건 야만적"이라고 분노를 터뜨렸다.


"한번 생각해봐 달라. 북한 연구자가 북한 관련 자료로 논문을 쓰지 않으면 무슨 자료로 북한을 연구해야 하나? 한글 연구자가 영어로 된 자료로 한글 연구를 할 수 있나? 즉, 소지와 찬양·고무는 하등의 인연이 없다."


김 이사장은 "내가 잘못한 게 없으니 압수수색이 들어왔을 때도 그대로 다 살펴보라고 했다"라며 "학문적 양심에 의해 연구되고 이론화된 저서 논문은 공안적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압수수색과 이런 수사는 국가적 폭력과 같다. 적극적으로 맞서겠다"고 말했다.(오마이뉴스 4.23.)


국가보안법은 '공포의 폭군' 티라노사우루스를 연상시킨다.

아무도 대적할 수 없었던 지구상 최고 상위 포식자 티라노사우루스. 

이 폭군 공룡도 6천500만년 전 소행성 충돌로 생긴 기후변화 앞에서는 어쩔수 없이 멸종되고 말았다. 


국가보안법은 '혈맹' 미국에서도 문제시하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국보법 갈고리에 한번 찍히면 헤어나올 길이 없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러왔다.

헌법보다 상위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올 초 남북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국보법의 존립 기반을 근본에서부터 흔들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말 당 중앙위 전원회의와 새해 시정연설을 통해 남북관계가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내부 특수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일반관계'라고 선언했다.

일반적인 다른 주권국가들처럼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서 지내자는 것이다. 다만, 이 두 나라는 서로가 '제1의 주적'인 적대적 관계이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는 '분단 조국'이라는 말도, '하나된 조국'이라는 말도, '한 민족'이라는 말도 쓸 수 없게 된다.  


'통일'과 '특수관계'는 과거 70여년간 남북관계의 키워드이자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유였다.

남북은 분단된 한민족으로서 반드시 통일을 해야한다, 그런데 북한은 적화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다, 북에 동조하는 자들을 박멸해야 한다는 것이 국보법 존재의 이유였다.  


그런데 이제는 '통일해야 할 북한'이 사라져버렸다. 남측 홀로 '사라져 버린 북한'을 상대로 '통일'을 갈구하는 이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있지도 않은 '반국가단체'에 동조하는 '이적 세력'을 박멸한다는 국가보안법이 가당키나 한가.  


기후변화로 먹을 게 사라져 생존이 불가능하게 된 티아노사우루스가 그 거대한 몸집을 땅바닥에 뉘인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존재 이유가 사라진 국가보안법이 그렁그렁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지금 우리가 눈앞에 마주한 장면과 겹쳐진다.

'폭군 악법' 국가보안법이 우리 눈 앞에서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다.  





















평화통일센터 하나 관계자는 "김 이사장의 자택은 (오전) 8시, 사무실은 (오전) 10시부터 20여 명이 투입돼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회 토론회 말고도 통일뉴스 등에 올린 글과 그동안 발간한 책까지 북한과 관련짓는 상황"이라며 "경찰의 강제수사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평화통일센터 하나는 이를 근거로 경찰이 압수수색을 한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학자인 김 이사장은 



지역의 시민단체는 총선 직후 벌어진 국가보안법 수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전위봉 부산민중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의 말과 글 등 학문의 영역까지 국보법으로 옭아매려는 건 심각한 사태"라며 "총선 민심을 받아들이기보다 공안탄압으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평화통일센터 하나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학계 등은 바로 규탄 대응에 들어가기로 했다. 23일 오후 2시 부산경찰청 앞에서는 '총선 끝나자마자 공안몰이 시작인가'라는 구호 아래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다. 여기엔 60여 개 이상의 단체가 참여할 전망이다.

작가의 이전글 [홍시생각 8] 조선 오보를 낸 사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