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인 안 되면 안 쓰는 게 원칙 아닐까
'조선 오보'에서 '조선'(朝鮮)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약칭이다.
조선일보의 조선이 아니다.
'조선에 대한 오보'를 '조선 오보'로 표기했다.
처음에는 '北 오보'라고 했다가 '조선 오보'로 고쳤다.
북측이 최근들어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국가체제를 공식화하고
남측-북측, 남조선-북조선 같은 종전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지난 1991년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가입했다.
유엔 회원국이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약칭으로 '조선'을
보도 용어로 표기하는 게 맞다고 본다.
지금은 조선에서도 남측이라고 하지 않고 '대한민국'으로 호칭하고 있다.
수식어 '괴뢰'를 꼬박꼬박 붙여 '괴뢰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지금 돌이켜봐도 얼굴 화끈거리는 오보가 한두 건이 아니다.
나로서는 한두 건으로 한정하고 싶지만, 30년 넘는 기자생활 중 오보가 어찌 한두 건에 그칠 것인가.
오보인 줄도 모르고 있다가 한참 지난 뒤에야 알아차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때에는 솔직히 덜 부끄럽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가 오보를 냈기에 꼭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얄팍한 생각에서이다.
'노동 미사일'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처음에는 '노동 미사일'의 '노동'이 한자로 '勞動', 영어로 'lavor'인 줄 알았다.
또, 조선(北)측이 '노동 미사일'이라고 이름붙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1998년 8월 31일 조선이 인공위성을 발사했을 때 비로소 미사일 작명법을 알게됐다.
조선에서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하면 그 미사일 이름 붙이기는 한국측에서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미사일을 발사한 장소를 미사일 명칭으로 붙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요즈음에는 조선측이 명명한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바뀌긴 했다.
'화성'이니 '화성포'니, '금성'이니, '북극성'이니 하는 것들은 다 조선에서 명명한 것이다.
노동 미사일의 '노동'은 함경북도 함주군의 '로동리'에서 따온 것이다.
勞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지난 1998년 조선이 첫 인공위성을 발사했을 때
한국측은 그것을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둔갑시키고선 '대포동 미사일'이라고 작명했다.
대포동 역시 지명으로, 함경북도 화대군 대포동이다.
대포동은 나중에 '무수단리'로 바뀌었다. 그래서 '무수단 미사일'이 등장했다.
이 명칭들은 어디까지나 한국측에서 붙인 것이다.
조선에서 부르는 명칭이 아니다.
한참 뒤에야 '화성 계열' 미사일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화성-O호' 식으로 작명한다는 것이다.
로동 관련 잘못된 용어 사용은 또 있었다.
지금은 올바로 표기하고 있지만
한국 매체에서는 '로농적위대'를 '로동적위대'로 상당기간 표기해 왔다.
'로농'은 노동자와 농민을 가리킨다.
노동자, 농민으로 구성된 적위대를, 타성에 젖어 노동적위대로 잘못 불러왔었다.
오보의 기억 또 한 가지는 사람 이름을 잘못 내보낸 것이다.
1990년대 당 중앙위 비서 중 농업 담당은 '서관히'였다.
조선측 방송매체만 모니터링하던 때에는 아무런 의심없이 '서관희'로 표기해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름자에 '희' 아닌 '히'를 쓰리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했다.
'서관희'가 아니라 '서관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은
조선의 인쇄매체, 즉 신문, 잡지, 조선중앙통신 기사를
1990년대 후반부터 접할 수 있게 되면서였다.
로동신문, 조선문학, 청년문학, 조선신보 등 인쇄매체를 특수자료로 분류하고
일부 언론사도 특수자료취급기관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 때부터 일부 언론사에서는 조선 방송만 듣다가 조선 신문을 볼 수 있게 됐다.
'서관히'로 찍힌 인쇄물을 처음 봤을 때
무척 낯설었다.
'박정희'가 보기 싫어 '히'로 적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한국에서도 드물긴 하지만 '히'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이 절로 떠오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을 잘 모르면, 단순히 오보를 냈다는 걸 넘어
한-조 간 이질화의 한 사례로 퍼뜨리는 등
엉뚱한 쪽으로 비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3월 15일 김정은 총비서와 그의 딸이
조선군 공수부대의 낙하산 강하훈련을 참관했다고 한다.
훈련 도중 낙하산 줄이 엉키면서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는데도 훈련을 강행했다고
4월 초 한국 언론매체들이 크게 보도했다.
당시 보도는 조선측이 공개한 훈련 장면을 세세히 분석했다는 정부 당국자의 말을 인용했다.
기자로서는 신빙성을 부여할만했다고 하겠다.
이 보도는 조선 정권 지도부의 잔인성을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데 '낙하산 사고' 보도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잔인성을 상쇄시키려고 김 총비서가 고기, 채소, 과일을 들고
군부대를 방문했다는 후속보도로 이어졌다.
군부의 지지기반이 오죽이나 허술하면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정부 당국자가 영상을 분석했고, 조선측에선 아무런 반론도 없으니 '낙하산 사고'는 사실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최고 지도자의 면전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면 그 훈련 장면을 비공개하는 게 정상 아닐까.
현장에 있지도 않은 한국측 당국자가 조선측이 공개한 영상을 세밀히 분석했다는데 그 분석은 맞는 것인가?
그런 영상을 공개함으로써 조선측이 얻는 이익이 과연 무엇일까?
현직에 있을 때나 떠나 있는 지금에나 변치 않는 생각이 있다.
조선 관련 보도만큼 저널리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분야가 또 있을까.
사실 확인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지만 현실적 제약을 이유로 간단히 무시된다.
조선측에 불리하기만 하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기사라도 그냥 무사 통과된다.
조선측을 긍정 평가하는 기사는 거의 본 적이 없다.
2000년대 초반 조선측과 언론교류를 추진할 때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 보도는 오보이니 정정해 달라는 말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너무 많아 일일이 지적할 수가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한국 언론을 아예 '그림자' 취급해서였을까.
언론교류하자고 똑같은 말을 10번쯤 반복할 때까지
묵묵부답하다가 하는 말이
"우리 인민이 남쪽 기자들을 싫어합니다"였다.
이명박 정권 집권 첫해인 2008년 가을
간신히 공감대가 이뤄져 기사 교류에 합의를 봤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그 '사업' 승인을 거부했다.
그 이후 언론교류는 익히 아는대로
과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당시 기사교류 사업을 거부한 쪽은 한국측이지 조선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조선이 거부해 언론교류가 안 되고 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기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잘못 알고 기사를 쓰면 그것은 오보가 되기 마련이다.
사실 확인을 위해 치열하게 취재를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쓰지 않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