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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용 Apr 18. 2024

[홍시생각 7] 에스컬레이터와 세월호(2)

10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도 안 되다니…

(월요일 발행 1편에서 계속합니다.)


2014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한 해


날이면 날마다 세월호 참사에 치여 살던 그해 5월 하순.

27일 한밤중, 정확히는 28일 오전 1시 무렵이었을 게다. 

한창 꿈나라에서 헤메고 있는데 당직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장성 효사랑요양병원에 불이 났다는 것이다.


요양병원에 불이 났으니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사망하지는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 기자가 지금 현장에 가 있다니 참으로 잘했구나. 

전화를 받는 순간 퍼뜩 든 생각이었다. 

이 사고로 환자 등 21명이 사망했다. 

보통 때 같으면 이 또한 대서특필할 대형참사였다.


이 자리를 빌어 꼭 남기고픈 말이 있다. 

당시 후배기자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세월호 기사 처리하느라 날이면 날마다 피곤에 쩔어 지낼 때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당직 근무하던 중 화재 발생을 빠뜨리지 않고 체크했고,

한밤중에 지체없이 현장으로 달려갔다. 

첫 전화보고를 받을 때 "현장에 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기가 할 일을 하는 그들이, 비록 후배들일지라도, 참말로 존경스러웠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눈물이 또 찔끔 난다.


2주쯤 지난 6월 12일 유병언 세모그룹 전 회장이 순천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세월호 선사가 청해진해운이고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자가 유병언 전 회장이었다. 

이에 따라 유 전 회장에게는 수배령이 내려져 있었는데 순천 별장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난데없는 시신 발견에 몇 가지 의혹이 제기됐으나, 검찰은 사망자는 유 전 회장이 맞고 타살 혐의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검찰 수사결과에 딱히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여전히 찜찜하다…. 


한 달쯤 뒤인 7월 17일 강원도 소방본부 소속 소방헬기가 도심지 아파트단지 인근에 추락했다. 

세월호 참사 지원활동을 마치고 복귀하던 길이었다. 탑승자 5명 전원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헬기가 떨어진 지점은 수완지구 아파트 단지 근처였다. 

하마트면 더 큰 참사가 빚어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11월 15일에는 담양의 한 펜션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바베큐 요리를 즐기다가 일어난 이 사고로 대학생 등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 


사람 같지도 않은 것들...일베 '폭식투쟁'


11월 말 본사로 인사이동됐다. 

바로 며칠 뒤에 찾은 곳은 광화문 광장이었다. 

세월호 가족들의 농성 천막을 찾아갔다. 

제대로 보도를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일베들이 이른바 폭식투쟁을 벌였다는 곳에 직접 찾아가서 

사람 같지도 않은 그들에게 실컷 욕이라도 퍼부어주고 싶었다. 

그들이 말하는대로 

놀러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쳐도 

슬픔, 고통에 잠긴 가족들이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바로 그 옆에서 

피자 치킨 파티를 벌인다?

어쩌면 이리도 모진 '사람들'이 있을까. 


언론매체 상당수는 일베를 '보수단체'로 칭했다.

함께 곡은 못할망정 말 같지도 않은 '폭식투쟁'을 벌인 자들이 

당최 보수와 무슨 인연이 있단 말인가.  


지금도 언론매체에서는 '보수'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는 말은 '보수'와 '진보' 두 가치체계가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일베 회원 같은 자들이 이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가.

내 보기엔 한국 언론매체들은 맛이 간 것들, 제정신이 아닌 것들, 더 정확하게는 미친 것들을 

보수라고 칭하고 있다. 

단언컨대, 미친 것들을 보수로 대우하는 한 이 사회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판박이 사고 왜 되풀이되나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에 연이어 발생했던 사고들.

유병언 시신 발견 외의 것들은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안전 불감증 사고들이었다. 

세월호의 아류였다.  


세월호 8년여 뒤엔 말 그대로 판박이 참사가 발생했다. 

2022년 10월 29일의 이태원 참사이다.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반복되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사고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그러니 책임자 처벌도 없으며,

추상같은 처벌이 없으니 또 다시 되풀이 되기 마련이다. 


'박근혜 7시간'을 밝힐 가능성이 있는 자료는 지금 대통령기록관에 들어가 있다. 

이 자료는 최장 30년까지 비공개가 가능하다. 

박근혜 아닌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무슨 자격으로 '대통령지정기록물'을 지정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러나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비공개의 예외가 있다.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는 경우와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기록이 중요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하는 경우에는 열람제한 기간이라도 열람 및 자료 제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회에서 이런 시도가 있었는지 들어보지 못했다. 법원쪽도 말할 게 없고.

22대 새 국회에 기대를 걸어 봐?

선거 공약을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기대난망이랄밖에. 


세월호는 군산 앞바다를 지날 때 '쿵'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15도가량 기울었다는 말들이 있었다. 

승객들이 증언은 상당한 신빙성이 있어서 언론에서도 기사화했었다. 

내 기억으로는 연합뉴스에서도  그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10년에 걸친 진상규명 작업에서도 여기에 대해 석명한 걸 들어보지 못했다. 

사고 원인을 내인설과 외력설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진상규명 위원들끼리 서로 갑론을박했다는 말만 들었다. 


'기레기'라는 치욕적 언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전원구조' 오보 건이었다. 

수학여행 단원고생들이 모두 구조됐다고, 사실 확인도 없이 그저 받아쓰기만 했다면서 엄청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기자들이 어떻게 생존자가 몇 명인지, 사망자가 몇 명인지 파악할 수 있을까. 

강력사건이 터지면 노란색 통제선(폴리스 라인)이 쳐진다. 

그 선 안으로는 기자도 들어갈 수 없다. 

아무리 취재가 급하다해도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판에

취재를 핑계로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며 구조작업을 방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기자들도 통제선을 지켜가며 취재한다. 


생존·사망자 파악은 관계 당국의 몫이다. 

당국에 대한 당연한 신뢰를 바탕으로 언론은 당국의 발표를 널리 전달한다.

그게 만약 오보라면 언론은 당연히 정정보도를 해야한다. 

전원구조 오보 건에 대해서도 경기도 교육청 출입기자들은 그렇게  했다. 

이게 '기레기'라고 욕할 일인가. 

욕은 오보를 생산한 경기도 교육청 관계자들이 먹어야 한다. 

그렇다고 기자들이 잘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이제라도 어떻게 그런 엉터리 보도자료가 생산됐는지 그 진상을 밝힐 필요는 있다고 본다.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에스컬레이터에서 세월호가 떠오른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안내방송은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지말고

'가만히 있어라'고 

메마른 기계음으로 반복해서 알린다. 

나는 하라는 대로 따라 한다. 

두 사람이 올라설 수 있는 발판 왼쪽에 

일부러 가만히 서 있기도 한다. 

안내방송 말대로 그게 안전사고를 막는 길이고, 

에스컬레이터의 잦은 고장을 방지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뒤통수가 뜨끔뜨끔하다. 

왼쪽은 바쁜 사람들이 걷거나 뛰어도 괜찮은 줄인데

왜 가로막고 서 있느냐는 불만의 눈총이 꽂히는 것 같다. 


세월호 승무원이 했다는 말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가만히 있어라'.

그 말대로 가만히 있다가 참변을 당한 걸 똑똑히 지켜봤기에 

저렇게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걸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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