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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용 Apr 15. 2024

[홍시생각 6] 에스컬레이터와 세월호(1)

10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도 안 되다니…

세월호 참사 발생 당시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아침 8시 좀 넘어서부터 대형 여객선에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TV 화면에서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여객선, 약간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여객선이 

현장 중계로 비쳐지고 있었다. 

그 현장은 우리 본부 소관 지역이었다. 


저렇게 큰 배가 가라앉지는 않겠지,

이제 곧 다시 움직이겠지….

배가 뒤집힌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담당 기자의 보고만 기다리면서

하릴없이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다. 


기가 막혔다

그런데 

다들 나처럼 쳐다보고만 있었던 모양이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던가 보다. 

배가 점차 더 기울더니

마침내  

밑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뒤집혀버렸다. 


바로 며칠 전 우리 팀원들은 특종을 건져냈었다. 

이른바 황제노역으로 널리 알려진 대주그룹 회장이 

벌금을 미납한 채 뉴질랜드로 도피해 

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발굴 기사였다. 


우리는 그 때 '한 해 농사를 너무 빨리 끝내버렸다'며

특종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 또한 

고향에 취재본부장으로 와서 '한 건은 했구나' 하는 안도감, 또 한편으로 뿌듯함을

남몰래 아껴가면서 즐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TV화면에서는 

거대한 여객선이 

자기 배를 드러낸 채 가라앉고 있는데

귀신잡는 해병대도, 불가능은 없다는 특전단도, UDT도 

그 무슨 구조대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선체가 하나도 남김없이 물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바닷물이 찰랑이는 화면을 봤을 때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기가 막혔다….


팽목항

전남 진도의 한적한, 조그마한 항구. 

전남 지역의 수많은 항구 중 별다른 특징도 없는 그저 그런 항구이다. 

사고 발생 열흘 전 쯤이었던가. 

친구가 조도(鳥島)에 바람 쐬러 가자고 해서 

따라 나선 길에 팽목항에 들렀었다. 

거기에서 배를 타고 가야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해역은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더 가야한다.

팽목항에서는 육안으로 그 해역이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세월호 참사 이후 팽목항은 

내 뇌리에 깊이깊이 각인됐다. 


몇년 전 가족들과 다시 한번 들러봤다. 

사고 수습 당시 세워졌던 몇 동의 가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고

등대길에는 수많은 노란 색 리본이 매달려 펄럭이고 있었다. 

세월호 기억관을 세운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무런 공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손톱 없는 시신이 인양됐다" 

현장에 나가있던 팀원이 '속보'(速報)를 보내왔다.

손톱이 다 빠진 시신이 인양됐다는 것이다.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쳤으면 

손톱이 다 빠졌을까….

먹먹했다. 

기사 송고 키를 누르고 잠시 눈을 감았다. 

이 기사를 내보내는 게 잘한 일이었나?

감정에 호소하는, 감정에 치우친 선정적 기사 아닌가?

내가 배우기로는, 내보내서는 안 될 기사였다. 

현장 기자에게 '이 기사 그만 쓰자'고 했다. 


이게 잘한 건지 잘못한 건지 지금도 자문해보곤 한다. 

참혹한 현장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다시는 이런 참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경각성이 높아질 게 아닌가, 

그게 기자가 할 일 아니냐는 반론이 거세다. 

"아빠, 엄마 살려주세요"라는 문자 등을 그대로 전한 어떤 언론사가 있었다. 

그 언론사는 독자들로부터 '기레기 언론' 아닌 '참언론'으로 평가받았고 

한국기자협회로부터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똑같은 사례가 다시 발생한다고 해도 나로서는 배운대로 할밖에.

처참한 시신 상태,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유가족 모습 등은  다들 짐작 가능한 일반적 현상이다.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슬픔을 나누며 가족을 위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시가 급한 구조작업을 더욱 다그치는 게 당시로서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왜 구조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지 등을 취재하는 게 우선이었다.


연합뉴스가 된통 욕을 얻어먹은 기사가 있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인력 장비가 투입됐다는 기사였다. 

사상 최대 규모가 투입됐다면 사상 최대 구조작업이 벌어졌어야 했으나,

아다시피 실상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연합은 기억에 남을만한 기사를 쓰지 않았다. 

이 점이 비판 받아야 할 대목이지, 사상 최대니 뭐니 한 것이 문제되는 건 아니다.


(2편에 계속. 목요일 발행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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