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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Mar 05. 2021

가난 그 슬프고 초라한 이야기

그게 어린 나의 인생이었다





커피소년의 75점이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100점은 불가능하고 90점은 너무 어렵고 75점' 정도면 평 타지~ 하는 노랫말이  '옳타쿠나, 역시! 75점 정도는 괜찮은 점수였어 음, 그럼 그렇고 말고' 하며 나에게 웃어 보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서 75점은 평타 그 이상의 고득점인 숫자였다. 하지만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던 내 점수. 나는 백분위로 계산되는 모든 것에서 잘하면 60점 평균은 40점이었다. 그게 내 인생이었다


고등학교 때 꽤 좋은 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나의 친언니가 다니던 학교였는데. 공부를 잘했던 언니가 입학할 때만 해도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명문고등학교였다. 나는 언니와 세 살 차이가 났었는데. 마침 내가 입학할 때에는 고등학교까지도 뺑뺑이 추첨으로 바뀌며 내가 들어갈 수 있었다 추첨으로 들어간 첫 학년이었다 명문고였기 때문에 아무리 뺑뺑이라 하여도 주로 공부를 원하는 아이들이 지망했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곳에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그저 그렇고 성격도 보통보단 모난, 어쩌면 보통보다도 더 못한 내가 명문고의 후광이 빛나는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뭐, 별게 있겠나 싶으면서도 뺑뺑이로 무작위 추첨으로 입학한 거면서도 웃기게도, 그 학교의 명성이 형편없게만 느껴지던 나를 나의 가치를 올려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 같은 반에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그 아이의 곁에 가는 게 그렇게  어려웠다. 단정한 옷차림 속 반듯한 깃과 새것 같은 하얀 소매 은은하지만 아낌없이 쓴 것 같은 섬유유연제 냄새 청결하고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겨 싸가지고 온 다양한 종류의 과일 그리고 모두가 나누어먹을 수 있을 넉넉함과 웃으며 건넬 줄 아는 친절함까지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불안정한 집 , 화목하지 못한 부모님, 사라진 나의 언니 그 아이 옆에 가면 나의 교복은 더없이 낡아 보였고 제대로 말리지 못해 덜 마른 와이셔츠의 냄새가 더 역하게 나는 것 같았다 일회용 봉지를 살 돈이 없어서 켜켜이 접혀있던 라면봉지가 짜증 나면서도 그걸 버릴 수 없는 그 가난함이 싫었다


사정이 있어 일산에 학교를 다니면서 부천에서 등하교를 했다 오며 가며세네 시간을 길에서 보냈다 진정한 성공스토리라면 그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에 서서도 공부를 해서 명문대에 진학하고 집안을 일으키는 수재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냥 나라서, 그렇지 못했다스타가 되어 떼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치기 어린 마음으로 '네가 연예인을 해?'소리가 듣기 싫어서' 나는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될 거에요! 연예인 말고 배우' 라며 진짜 원하는 것을 말하지도 못했었다 어쩌면 '내가 무슨 연예인을 해'라고 스스로를 믿지 못했는지도 모르다. 나의 고삼은 그렇게 끝났다


그게 나였다, 목소리만 크고 가진건 없고 지고 싶진 않아서 핏대만 세우는, 나의 꿈을 스스로 인정하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인정받고만 싶어 하는 게 나였다 그러고 보면 학교 시험에서 백분위로 받았던 나의 점수는 내 인생 점수였다. 삶 그 자체의 점수 낡고 구겨진, 덜 마른 셔츠 같이 초라했던 어린 내 인생. 겨우겨우 산업체 전형으로 원했던 연기를 배울 수 있는 대학을 들어갔는데 먹고사는 일 때문에 대학에, 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먹고사는 일이 이렇게나 중요하고 내 삶을 쥐고 흔들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학교는 다녔지만 점심시간엔 점심을 먹을 돈이 턱없이 모자라 늘 다이어트를 핑계로 함께 하지 않았고 학과 시간이 끝나면 남아서 공연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방과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다음 달 고시원비를 낼 수 없었기때문에 학교생활에 충실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는 치열하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깟 먹고사는 일이 뭐라고 내 발목을 붙잡았다


내 집이 너무 필요했다 작아도 좋으니 서울에 우리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너무 소중했다 돈을 벌어야 했지만 돈을 버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월세, 그것만 아니어도 당장 다음 학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데 그놈의 월세 그것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건 꼭 필요한 돈을 아끼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세끼를 한 끼로, 교통은 두 다리로 더 낡은 곳으로 조금 더 어둡고 습한 곳으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늘 무서웠지만 돈이 더 무서웠다 하루하루 정해진 돈을 함부로 소비할 수 없었다 그렇게 스무 살 나의 주거와의 전쟁이 시작된 거다


나에게  강점이라 하믄 다양한 주거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것이다지금 보면 좋은 경험이었어 라고 이야 할 수 있지만막상 그 좋은 경험을  다시 해보라고 하면 , 하기 싫다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친구에게 내 자식에게도 그 누가 되더라도 그것만이 방법이 아니니 다른 방법을  취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특히 나와 같은 여자라면.. 굳이  꼭 인생에서 해야 할 경험도 아니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해 가는 게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은 경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다양하고 열악한 주거의 공간에 살아보니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당연한 쾌적함이 얼마나 감사한 공간인지 알게 되었고 그  어떤 낡고 후미진 집도 누군가의 고단함을 포근히 안아주는 소중한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깔끔하고 쾌적하고 폼나는  집이 있는가 하면 좁고 누수의 흔적도 있고 낡고 병든 집도 있다  그리고 그런 낡은 집을 소비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낡은 집  조차도 꿈인, 목표인 사람 그게 나였다 


낡은  집은 한 사람의 마지막 집 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겐 넓고 깨끗하고 쾌적한 집으로 가기 위한 과정 속에 있는 집일 수도있다. 내  집 마련이란 그런게 아닐까 계속해서 지금보다 나은 집을 꿈꾸고, 꿈꾸는 집에 살기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아내는것!


내  집이 생기니 보는 눈이 정말 달라졌다집을 대하는 태도, 경제적 생각 또는 정당에 대한 생각, 그리고 미래까지내 집 마련은,  일생의 단 한번 이루어지는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나의 마지막 집이라 생각하지 말자  계속해서 돌다리를  건너듯 집을 사야 한다첫 집을 구매하는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나이 성별을 구분하고 처음 해보는 일이라면 당연 어렵다 결코  나이가 많다고 내 생애 첫 집을 구매하는 일이 쉬울 수는 없고 결국 해본 놈이 장땡이었다


내가 겪어본 가장 힘들었던 주거 환경은 고시원이었는데 내가 살아본 4개의 고시원 중 최고로 힘들었던 곳은 

19살  때 일산마두에서 잠시 살았던 남녀공용 고시원이었다 십 년도 더 된 일이고 내가 그 공간에서 한 달밖에 살지 않아서 화장실이나  주방 입구가 기억이 잘 나지는 않는데 가장 불편했던 기억은 아주 좁은 복도였다고시원은 내 방을 제외한 모든 공간을 함께 쓰기  때문에 내 방문을 나서는 순간 외부여서 문을 열자마자 모르는 사람이 서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복도가  어찌나 좁았던지..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도 못 지나가는 정도 두 사람이 지나가려면 각자 벽을 보고 서있어도 엉덩이가 스치고  지나갈 정도의 아주 좁은 복도였다 화장실이나 부엌에 갈 일이 있으면 먼저 방 안에서 문에 귀를 대고  복도에서 인기척이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살짝 문을 열고 재빨리  화장실 또는 부엌으로 뛰어가는 내가 있던 그곳


그  외에도 바벌 레와 함께 쓰는 주방이 있던, 샤워를 하면할 수록 물이 차올라 발을 담근 채 샤워를 해야 했던 상수동 고시원 낡은  상가, 계단 위 나를 쳐다보던 노숙자를 애써 아무렇치 않게 지나야 했던, 칸막이 상가 화장실을 개조해 샤워실로 썼던 좁고 아주  낡은 삼성동 고시원 


모든  것이 양호했지만   5만 원이나 더 비싸 좀 더 고된 아르바이트를 찾아 헤매야 했던 대치동 고시원 지역 선정부터 잘못된 것  아닌가 싶은 비싼 동네의 고시원들이었지만 내가 주된 활동을 하던 곳이 삼성동 홍익동 근처였던지라 한 푼이라도 덜 쓰려면 그 근처에  살아야 했다 교통비를 아껴야 했고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했다 직주근접의 이해가 완벽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일을  하는 주된 공간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주거의 공간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같은 시간을 놓고도 누군가는 휴식을 누군가는 새로운  취미를 위해 또 가족을 위해 시간을 쓰지만 누군가는 길 위에서 이동시간이 돼버리는 건 그때도 지금도 다르지 않다


재수  학원이 있던 홍대 근처 고시원, 대학 극장이 있던 삼성동 백암아트홀 근처  고시원조금 더 나은 공간을 위해 찾아 나섰던 대치사거리 고시원까지 시간을 줄이고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잠을 줄여가며 지금을 벗어나고 싶었다 좋은 입지에서 좀 더 싼 고시원을 찾기 위해서 애를 무던히도 썼던 나는 '시간은 돈이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구구절절 옳은 말이  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오롯이 나 혼자 쓰는 방 나 혼자 드나드는 현관 그 작은 월세방 하나가 나에게 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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