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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Mar 11. 2021

안전은 옵션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사는 것




독립을 해서 좋은 건 뭘까.. 늦게  귀가해도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지 않는 거? 내가 원하는 사람을 아무 때나 집에 초대할 수 있는 거? 사람마다 독립의 이유는  나름이겠지만 나는 독립을 해서 좋은 건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서 맨몸으로 털레털레 방으로 들어가 어떤 속옷을 입을지  여유롭게 골라 세월아 네월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 정말 이것만큼 꿀 같은 독립의 그림이 있을까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면서도 혼자 있는 시간도 있기에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모두 함께 사는 공간에서 맨몸  활보는 뭐랄까 남사스럽고 부끄럽기까지 해서 내 공간으로 호다닥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내가  이렇게 맨몸 러버가 된 건 고시원 생활에서 겪었던 불편함이 한몫을 한다내가 생활하는 공간, 이외의 화장실 부엌 현관을 공용으로  쓰다 보니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당연 치 못하게 되어서 인 것 같다. 고시원에서의 생활은 참 여러모로 불편했었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에 배경이었던 그런 고시원이 오리지널인데 내가 고시원을 살 때에도 창문이 달린 방, 화장실 샤워부스가 있는 방 등  고시원의 고급 버전은 있었다. 늘 돈이 더 비쌌을 뿐


원래  고시원은 고시공부를를 위해 그곳에 정착해 공부를 하는 곳이지만 그때도 지금도 고시원은 성별과 나이를 떠나 소득이 낮고 형편이  어려워 방 한 공간에 자신의 살림을 차리고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하루를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김치통을 열면  뚜껑 주변으로 마른 고춧가루가 지저분하게 묻어 담겨있는 김치와 무료로 나누어주는 라면이 있지만 배치되는 순간 마법처럼 사라지는..  누린내가 벤 밥통 속  마른밥 조차 소중한 사람들이 사는 곳 침대는 내 어깨에서 양쪽으로 한 뼘식 여유공간이 있고   다리는  책상 밑으로, 옷의 밑단을 쳐다보며 누워야 하는 나의 소중하고 유일한 휴식공간


하루는  씻기 위해 샤워실에 들어가 샴푸를 흔드는데 물을 넣고 흔들어 써도 거품 하나 안나올 정도로 샴푸가 없었다 '아.. 나 샴푸  없지..'샤워실에서 벗어두었던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 방 앞 줄줄이 세워져 있는 목욕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들킬까 손바닥을 옴팡하게 만들어 이쪽 바구니에서 샴푸 한번 저쪽 바구니에서 한번씩 샴푸를 훔쳤다 손가락 사이로 샴푸가 줄줄  세는것이 아까워 대충 머리에 바르고 다시 샤워실에 들어가 옷을 벗으며 '꽤 괜찮은 방법인데? 내일도 이렇게 씻어야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머리를 감고 나와 서리한 바구니를 보는데 문득 창피해졌다 고시원 총무가 샴푸의 주인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런데에 사니까'라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고 스스로에게 많이 실망한 날이었다  이렇게 내 인생  샴푸 도둑이 될 수는 없었다 이후로 나는 꽤 오랜 시간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그래도 내 미래가 샴푸 도둑은 아닐 거야 라고 굳게  믿으며 그렇게 씩씩하게 고시원에서 생활을 했다


작은 고시원 방에서 수납공간을 찾기란 어려웠지만 작은 박스들을 주어와 화사한 색으로 포장해서 침대 아래 넣어 서랍으로 사용하며  나는 꽤 깔끔하고 구조적으로 살았다 


하지만 고시원은 방 한 칸을 제외하고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 이때 문에 주방이며 화장실이며 현타가 올 때가 너무 많았다 일단은 그지역에서 가장 낡고 후지고 냄새나는 싸구려 고시원을 얻다 보니 기본시설은 말해 무엇하겠나 씻어야 하는 샤워실 먹어야 하는 주방 '그래,  안 먹고 굶는다' 치자 '주방 안 가면 그만이지!' 근데 씻어야 하는데 샤워실이고 화장실이고 너무 추웠다 '엉덩이를  변기에 가져다 대는 일이 이리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말인가!  '매일 아침저녁 씻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2년을 살았다. 잘 안 씻었던 것 같다 읔..  젊은 여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하고 싶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정말 모른다 최소로 정말 최소한의 씻기로 버텼던 나의 더러운 지난날 


그렇게  편입에 성공하여 지방의 4년제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엄마의 형편이 좋아져 아주 푹 파인 지하방에 앞에 담이 창문의  2/3가 덮여있었지만 나 혼자 쓰는 화장실 나 혼자 쓰는 현관문 오롯이 나 혼자 쓰는 나만의 공간이 생기게 되었다 정말 꿈같았던,  원룸으로 이사 가던 날 잊을 수가 없다 고시원을 탈출하던 그 날 그 누구보다 행복했던 나의 이삿날


투베이 원룸, 주머니에서 만지작 거리던 열쇠를 꺼내어 현관문 손잡이에 있는 열쇠 구멍에 열쇠를 넣고 돌려 문을 열었다 내 신발만 있는 작은 현관의 공간이 있고 방으로 살짝 올라서면 오른쪽에는 싱크대가 왼쪽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옆으로 밀어 여는 문을 열면 고시원 방 세 개쯤은 합쳐놓은 크기의 널찍한  같은 나의 첫 원룸 현관도 부엌도 화장실도 나 혼자 쓰고 베란다에 내 옷만 세탁할 수 있는 세탁기가 돌아가고 수건 다섯 개는 물론, 행거 날개를 쫘악 펼쳐 속옷부터 겨울철 필수템 후드티도 너끈히 빨아 말릴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자랑하던, 지하방이었고 담이 절반 이상 가리는 창문이지만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비가 와서 우산을 들고나가야 하는지,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창문이 달려있는, 창문도 한 달에 오만 원 정도는 더 줘야 해서 큰 고민 없이 포기하게 했던 고시원살이를 청산하고 만난 전세 3500의 청주 원룸 언덕을 한참이나 내려가야 하고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 안쪽으로 얕은 언덕배기에 있던


평범했던 하루의 끝에 집에 와서 옷을 훌렁 벗고 큰 볼륨으로 개그콘서트를 보며 기지개를 주욱 켰다 혼자 사는 집에 서 훌렁 벗은 옷가지 큰 티브이 볼륨, 꿈같은 하루의 마무리, 기지개를 켜다가 이상한 요가 자세도 해보고 그러다 순간에 든 낯섦이 공포가 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 혼자 사는 집 그렇지 못한 기운, 늘 좋기만 했던 창문으로 불편함이 들어왔다


재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 싶었지만 그럼 그 불편함도 빠르게 사라질 것 같아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화장실로 들어가 앞집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 담벼락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좀 봐주라' 통화를 하던 우영이의 목소리가 담벼락 넘어 '거기 누구예요!' 하는 큰 소리로 들린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인터넷 선좀 보려고 올라온 거예요'라고 말 더니 아무렇치 않은 척 도망을 가더랬다

 

편안함을 주던 나의 궁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안전은 옵션 같은 거였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사는 것 아마 그 담벼락 너머에 소리쳐줄 내 친구가 없었다면 그 담벼락 남자가  나쁜 생각 더 빨리 실행했더라면..


벌써 10년이나 지난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비슷한 상황에 놓이거나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과민 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생활의 작은 것들이 나를 만든다 일일이 내가 이렇게 된 배경을 만나는 모두에게 전할 수는 없고 그래서 나를 이해 못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과는 인연이 되지 못하고 스치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결국 생활이 사람을 만들고 스스로가 주변을 만든다


생활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고 사랑하고 살아간다 부자는 부자를 만나고 가난한 이는 가난한 이를 만난다고 하지 않는가 나의 순간이 켜켜이 묻은 지금의 나와 네가 만나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학창 시절 어느 순간 내가 잘 어울리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이혼가정 너도 이혼가정 쟤도 한부모 가정이었다 서로 알게 모르게 끌어당기고 있는 슬픈 끌림 내 생활에 묻어있는 가난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 삶에 배어있는 낡고 어두운 내 공간이 짠하고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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