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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작까 Jun 16. 2021

예민한 너를 키우는 일

아기가 태어나고 백일쯔음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아기 뒤집기 하는 시기' '백일의 기적' 등을 검색한다 모든 사람들이 인터넷에 글을 쓰지 않기때문에 그것이 전부다 라고 이야기 할 수 는 없지만 네이버 검색을 해보면 그때쯤 통잠을 자고 뒤집기를 시도한다고 되어있다 (엄마가 되면 검색에 많은 의지를 하게 되더이다)


우리 수호는 정확히 180일에 뒤집기를  했다 아마 태어나고 6개월때였을거다 뒤집기를 늦게 하는 아이도 있어 라는 말로 위로를 삼기에도 참 늦은 시작이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아이가 뒤집기가 느린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늦게 알았다) '늦은 뒤집기' 백일 아기 뒤집기 언제' 와 같은 불안을 마음에 두고 검색을 했더니 걱정은 배가 되었다 늦은 아이도 있다는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조바심이 많이 났지만 조바심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 지 몰랐다


어쩌면 그 조바심이 아이를 채찍질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기다린다고 기다렸는데 아이는 엄마의 재촉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재우려다 보니 나는 유모차를 끌고 꽤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자차가 없는 뚜벅이 시절이라 가깝게는 한시간 내외의 거리를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지하철을 타면 배려도 많이 받고 어르신들께 인사도 수 없이 많이 받는다 . 작고 귀한 생명을 바라보는 인사의 형태는 다양하다 멀리서 흐믓하게 눈으로 인사를 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다반사였다


4개월즈음부터 시작됐던 낯가림은 '에고 아기가 낯가리는 구나' 라고 지나가기엔 나에겐 너무 큰 후폭풍이 있었다. 크고 갑작스러운 인사는 무례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아이가 놀래서 울면 나는 몇번 지하철을 그냥 보내야만 했다. 그러고도 놀란 아이가 쉬이 진정이 되지않으면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 아이에게 되례 화가났다 '너도 참 유난이다 야' 유모차를 밀던 손이 거칠어졌다. 아이는 참 예민했다. 9개월에 시작한 문화센터는 너무 울어대는 통에 쫒겨나기 일수였고 (달래고 오란말이었지만 너무 울어 쫒겨나는 수준) 잘 달래서 들어오면 활기찬 선생님의 목소리에 다시 눈물 바람이었다


분리 불안이 심한 아이였다. 함게 앉아있다 손을 길게 뻗어 리모콘이라도 잡을라치면 아이는 빼액하고 울었다 바로 옆 선풍기를 키려고 허리를 돌려 숙이기라도 하면 통곡을 했다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으로 꽤 오래 달래야 했다 집에서 하는 모든것을 아이를 달고 해야했다 아주 크고 강력한 껌딱지였다


'엄마 여기 있자나 니 엄마 어디 안가 어디 갈데도 없어..'


촉각은 또 어찌나 예민한지 낯선곳에선 신발은 물론이요 겉옷은 못 벗기고 바닥에 살짝 넘어지면 손으로 짚어야하는 바닥의 느낌이 싫어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주저 앉아 울기만 했다. 살에 닿는 모든것에 예민했다 촉감놀이는 언감생심 잘 받아먹는것도 못하면서 뭐라도 떨어지면 악을쓰며 치우라 했다. 그렇게 두돌이 다 되도록 낯가림시기는 지나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친정은 멀었고, 시댁은 장사를 했다 아이를 맡기고  잠시라도 도망칠 틈이 없었다  어린이집을 보내기엔 아이가 너무 예민했다  선생님들을 힘들게 할 것같았다 (더 솔직히 미움을 받을 것 같았다) 낯선 동네로 이사를 와서 부지런히 놀이터로 놀러가고 친구도 사귀었지만 아이는 엄마와 함게 하길 원했다. 아기때부터 자주만나던 친구를 만나도 똑같았고 키즈카페와 같은 곳에 가서 흥미로운 장난감을 보아도 혼자서는 놀지 않았다 궁굼해도 절대로 혼자서는 행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돌이 되었다


그때쯤일까 동네 어린이집에 월반(3세 1,2월 생들은 4세반을 다닐 수 있는 것)하여 입소할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오지않을때 적응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주를함께 어린이집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처음 떨어지는 날 아이는 20분이 넘게 현관에서 목이 터져라 울었다 다음날도 울었고 그다음날은 집에서 부터 나가면서 울었다 적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이는 다니는 내내 울며 등원했다 물론, 문이 닫히면 바로 눈물도 뚝 그치긴 했지만 늘 등원은 나에게 숙제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늦는거 같지?'


아이가 두돌이 되었는데도 아이는 엄마, 아빠는 물론 단어 라고 말할 만한 어떤 표현도 없었다 사실 이미 18개월즈음에 한 영유아 검진(18-24개월 사이에 하는검진) 표현언어영역에서 거의 전체의 문항에서 '전혀 하지 못함' 에 선택을 했기에 의사선생님은 아산병원에가서 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하셨지만 아이가 너무 어리기도 하고 주변에 물어보아도 특별함이 보이지 않아 가지 않았는데 두돌이 지나니 조바심이 부스터를 달고 달려왔다  


'뭐 부터 해야하는 거지..' 말을 못하는 것 빼고는 정말 별 문제 없어보이는데.. 별로 내키지 않았다 조바심은 났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느린아이겠지 뒤집기부터 늦게 시작했는데 뭐!' 라며 한쪽으로 미뤄뒀다 그러던 두돌의 끝에서 '아바!아빠..빠!아빠!' 하고 소리 쳤다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니 맙소사!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제 말 문이 터지는건가? 역시 육아는 기다림이라고 했던가 조바심이 한순간에 꽃잎이 되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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