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빈곤의 대물림, 사회구조적 접근

by 이레


박사과정 동안 양적 연구방법론을 습득하고 데이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나면, 사당동 판자촌의 빈곤 가족을 25년 동안 연구한 조은 교수님처럼 오랜 시간 현장의 이야기를 담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그 안에는 대상과 동고동락하며 부대낀 경험에서 나오는 깊은 통찰과 대상을 향한 깊은 애정,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이 책도 그랬다. 책을 펼칠 때 작가소개를 먼저 보는 습관이 있는데 저자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와 책에 담긴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리고 중간중간의 질문들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내내 놀라고 또 감탄했다.

나는 성장하고 싶은 어린 생명이 가난이란 굴레와 가족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고 굴절되고 다시 일어서는지 그들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싶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난에 대한 인식이나 이미지와 다른,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있었다. 나는 청소년들이 삶에서 얻어낸 그 통찰과 지혜를 학문적으로 담아내려고 했다.



1. 가난한 가족은 왜 우울한가?


흔히들 빈곤층은 왜 미래를 위해 저축하지 않고, 왜 절박한 순간에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고, 왜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배치되는 선택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재화가 없음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고 사회적 존재가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에 대처하고 생존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해야 한다. 즉, 생존 자체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합리적 판단을 하고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할 에너지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래서 빈곤층이 전략적 사고나 내면의 강인한 힘을 갖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가난으로 인한 재화의 부족이 우울증, 알코올 중독과 같은 정신적 취약성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러한 문제행동은 빈곤 극복을 위한 합리적 판단과 장기적인 계획 설계, 실천 의지 등을 약화시킨다는 그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문제가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을 빈곤의 대물림으로 설명하였다.


빈곤의 대물림, 너무나 만연해서 무감각해진 문제에 대해 얼마 전 리뷰했던 삶의 불안정성과 시간 지평(time horizon)에 관한 논문*을 다시 살펴보았다.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정성이 개인의 시간 계획, 관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색한 연구로, 비교적 저소득 가정일수록 부모의 자녀 양육 기제가 즉각적인 처벌과 보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혔다. 빈곤 가정의 자녀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삶은 매우 불확실하며 예측 불가능한 것임을 학습한다. 그 때문에 장기적인 성과를 위해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의 모습을 보인다.


이와 함께 내가 처음으로 접한 자기 계발서인 <마시멜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마시멜로 실험은 1960년대 아동의 지연된 보상 능력, 자아통제력이 장기적인 삶의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눈앞에 보이는 즉각적인 보상을 택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부모의 소득이 낮았다. 당장 오늘 먹을 것이 없고 내일을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자연스러운 선택임을 짐작 가능하다. 따라서 빈곤 가정의 아이들이 미래의 보상을 위해 자아통제력을 발휘해서 미래 지향적 사고를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는 아동의 기질과 역량 등 개인적인 요소에 주목했다면, 이후 가구소득과 부모의 직업 등의 환경요인이 밝혀지면서, 개인의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탓하는 빈곤문화론을 넘어 사회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2. 가난을 극복하는 힘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성공적으로 빈곤을 극복한 청년들은 이런 교육체계 안에서 성찰하는 힘을 기르고 자신의 가치체계를 만들어냈다. 성찰하는 힘을 통해 자신의 시각과 신념을 구축했다. 빈곤 청소년들은 학업성취가 낮고 당장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지만, 자신만의 단단한 핵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생존’을 넘어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를 인식하면서 성찰하는 힘을 길러왔을 것이다. 이러한 힘은 짧은 기간 안에 만들어질 수 없고, 단순하고 안전한 삶의 궤적 안에서도 형성되기 어렵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 좌절, 고통, 성취 등의 단계를 거쳐야 서서히 쌓여가는 내면의 힘이 된다.
지현의 ‘도움 요청‘과 ’ 성찰하는 힘‘은 가난한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를 생존에만 다 쏟아붓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신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보듬고, 어떻게 자아의 욕구를 발견할 수 있는지 하나의 훌륭한 전략을 보여준다. 이는 빈곤 정책을 고민할 때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나 기회 제공을 넘어서서 다른 차원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한편, 저자는 소위 빈곤한 가정은 '가난하고 게으르다, 비합리적이다'라는 빈곤문화론에 반하는 실제 사례들을 담았다. 빈곤 청소년들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가난으로 인한 자원의 한계와 상황을 인정하고, 영리하게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삶의 지혜를 보여주었다. 또한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통해 자아정체성과 회복탄력성이 길러졌다. 저자는 가난을 극복하는 힘을 도움 요청(자원 활용 전략)과 성찰하는 힘 두 가지로 해석하였다.


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도 이와 같다. 가난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돌봄이 부재했던 나의 청소년기, 여전히 그런 원가정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나의 청년기를 대입해 보게 된다. 학업을 향한 열심은 현실을 탈피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었다. 한정적인 자원은 부모 돌봄을 홀로 감당하게 했고, 그때부터는 가난과 결합된 여러 문제들을 마주했다. 그럼에도 지현의 사례처럼 사회적 안전망이란 그물에서 새어나가지 않도록 애쓰면서 그 안에서 활용할 수 있는 최대한을 누렸다.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내가 취한 최선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지금은 그 너머의 비전을 이루고자 고군분투하지만, 여전히 내 삶에서 마주하는 큰 모순은 단기적인 재정 계획과 지친 나를 위한 과도한 보상 심리다. 그래서 누군가는 내 크고 작은 선택들이 비현실적이고 무모하다고 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이러한 고민이 남아 있기에 빈곤의 대물림 문제를 접할 때마다 씁쓸한 감정이 든다. 빈곤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성인이 되어서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는 생애주기적 관점을 고려하면, 빈곤은 개인의 어떠함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Nicolas Fieulaine. 2015. Precariousness as a Time Horizon: How Poverty and Social Insecurity Shape Individuals’ Time perspec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