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 그 사이
내가 활동하고 있는 동아리 ‘여행하는 선생님들’에서는 매 학기 한 번씩 도서산간 지역의 고등학교로 교육여행을 떠난다. 교육여행이 조금 생소할 사람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여 보자면, 4-5일 동안 도서 산간 지역에 머물며 3시간가량의 가치 수업을 진행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수업을 준비하거나 그 지역을 여행하는 활동이다. 보통의 교육봉사와 비슷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이 활동에서 학생들과 나누고자 하는 주제가 특정 개념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라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나의 대학교 전공이 교육 분야기 때문에 수업을 구상하고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도 이와 같이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 진행되는 수업이라고 한다면 개념 위주의 수업이 많고 나 또한 그런 수업들에 더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흔하게 생각되는 ‘수업’이라는 틀을 깨는 것이 어려웠다. 그리고 개념 수업을 진행한다고 하면 성취 기준 및 교과서 등의 보조 자료가 존재하는 반면에 가치 수업은 오로지 나 스스로부터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끌어내야 한다는 점이 낯설었다. 수업을 준비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스스로를 더 잘 아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했던 것이다.
여러 번의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내가 학생들과 함께 얘기하고 싶은 가치가 각 수업에 담겼다. 어느 수업에서는 내가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나에게 꼭 필요한 마음가짐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특정 물건이 꼭 필요한 것처럼, 목표를 향해 잘 나아가기 위해서도 나에게 강점이 될 수 있는 또는 나에게 이미 있지만 그 순간에 딱 필요한 마음가짐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나의 믿음이 담겼다. 또 다른 수업에서는 서로가 비슷하기도 하지만 다를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이렇게 다른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여 오늘날의 세상을 이룬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게임과 만들기 활동으로 풀어냈다. 교육여행은 보통 6명의 대학생 멘토들과 함께 간다. 다른 대학생 멘토들이 수업을 구상하면서 담는 가치들을 접하고, 공유하는 시간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교육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어떤 참가자가 위와 같은 가치 수업에 대한 피드백을 남겼다. 동아리 ‘여행하는 선생님들’이 교육여행에서 나누는 가치들이 어떻게 보면 이상적이며, 세상과 동떨어지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 주변의 세상은 우리가 수업에서 학생들과 얘기 나눈 가치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데,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 대학생들이 고등학생들을 만나, 실제 현실을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이러한 질문은 작게는 교육여행의 가치 수업 그리고 크게는 나 스스로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내가 지금까지 학교와 수업에 대해서 쌓아오던 생각을 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너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는 않은가? 내 이상과 현실 사이 어느 부분에서 타협을 해야 하는지, 사실 ‘타협’이라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리나라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또한 미래에 나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 학교 안팎으로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흉흉한 범죄 소식에 대해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학교와 교사는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과거 내가 멋모르고 교사가 되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학교가 즐겁고 행복한 공간이었으며, 나 또한 다른 학생들에게 그러한 공간을 제공해 주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나의 가치이자 이상이었던 것일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은 과연 내가 교사가 되어도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내 꿈에 대한 의문으로까지 다다랐다. 내 가치를 실현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교사가 될 수 있으며, 되어야만 하는 걸까. 아마도 내가 교사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이후로 마주한 두 번째 시련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에 대해서 여러 명과 고민을 나누었다. (나의 고민에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대화를 나누어준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학교에서만큼은 이상적일지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결국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나아가게 된다면 원하지 않더라도 학교에서 배웠던 혹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가치와 맞지 않는 상황을 마주해야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성인이 된 학생들이 세상을 마주하며 혼란을 느끼기보다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스스로가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서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아무리 세상이 절망적이더라도 학교에서만큼은 학생들에게 희망을 가르쳐주고, 학생들이 옳은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이를 통해 부조리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인지하고 고칠 수 있는 용기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사람들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포기하고 맞추어 살아가기보다도, 그들로 인해 세상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는 내가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조금 더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고,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하여 부끄럽거나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모두의 가치관은 다르고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가치관을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이와 별개로 나는 나의 생각에 믿음이 있다. 어쩌면 내가 미래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을 마주할 사람이기에, 학생들 한 명 한 명에게 작고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다른 어른들보다 조금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 그들에게 아직 이 세상은 살아갈 만하며, 그들로 인해 충분히 변화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
학생들이 그래도 현실에 크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으니까,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 나 또한 조금씩 현실의 어두운 모습을 알려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는 앞에서 내가 언급한 이상적인 기대와 상충될 수도 있다. 결국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적절하게 다 다루는 것이 좋겠다. 당연히 나도 언제나 옳을 수 없다. 사실 이게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그리고 교사가 되면서 가장 무서운 부분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만 옳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작고 큰 일에 도전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며 현실을 계속해서 직시해나가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들로부터 배우고 싶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의 생각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정리하고 싶다.
이러한 생각들이 곧 나의 가치관이며,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교사 및 학교의 모습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또 어떠한 가치관을 마음속에 품고 사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각자의 가치관을 소중하게 지키면서 세상을 살아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