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매 추출법
먼 옛날, 조향사들은
기름 위에 꽃잎을 올려 향이 배기를 기다렸다.
이 느린 방식은 앙플라주라 불렸다.
(향수는 어떻게 피어나는가 2화 참고)
섬세했지만, 생산량은 적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향을 더 많이, 더 온전히 꺼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전환점은 19세기에 찾아왔다.
이 시기는 유기화학이 발전하던 시기였다.
1828년, 프리드리히 뵐러가
무기물에 열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요소라는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생명체 속에서만 만들어진다고 믿었던 물질을
생명력 없이도 합성해 버린 것이다.
그 후 화학자들은
식물과 꽃에서 추출한 성분의 구조를 분석하고,
그 향을 구성하는 분자를 하나씩 밝혀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휘발성이 높고,
향기 분자에만 선택적으로 스며드는
유기 용매들이 등장했다.
헥산(Hexane), 석유 에테르(Petroleum Ether) 같은
용매는 향기 성분을 빠르게 녹이고,
간단한 공정으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이 발견은 조향사들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열을 쓰지 않고도,
열에 약한 원료의 향을
안전하게 꺼낼 수 있는 길.
이것이 용매 추출법의 기반이 되었다.
Chapter 4.
[Solvent Extraction]
과정은 아래와 같다.
1. 1차 추출: 용매 처리
꽃이나 잎을 휘발성 유기 용매 속에 담근다.
이때, 향기 성분뿐 아니라
색소, 지방질, 왁스까지 함께 용매 속으로 스며든다.
강하게 끓이지 않고, 실온이나 약간 낮은 온도에서
시간을 두고 향이 천천히 풀려나오도록 한다.
2. 콘크리트 생성
추출액 속 용매를 진공 상태에서 증발시킨다.
그렇게 남는 것이 콘크리트다.
*콘크리트: 왁스와 방향 성분이 섞인 반고체
3. 에탄올 재추출: 향만 골라내기
콘크리트에서 향 성분만 에탄올에 녹여낸다.
왁스와 불순물은 에탄올에 잘 녹지 않으므로
그대로 남는다.
그 후 냉각과 여과를 거쳐 왁스와 불순물을 제거한다.
4. 증발
여과된 에탄올 용액에서 알코올을 천천히 날린다.
마침내 얻어지는 고농도의 순수 향.
이것이 앱솔루트다.
이 방법은 이렇게 열에 약한 꽃,
향의 변화를 최소화해야 하는 원료에 특히 유용하다.
다만 극소량의 용매가 남을 수 있어
인체 치료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다.
용매 추출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들이
향을 조용히 데려오는 기술이다.
마치 오래된 서랍 속에서 꺼낸 편지처럼,
꽃과 식물이 품고 있던 이야기를
가장 온전한 상태로 펼쳐 보인다.
그 한 방울의 앱솔루트 안에는
햇살이 스미던 아침의 공기,
바람이 흔들던 꽃잎의 질감,
그 계절만의 온기가 함께 담겨 있다.
용매 추출법은 그렇게
시간과 계절을 병 속에 담아
다시 꺼내어 코 끝에 닿게 해 준다.
그 순간, 우리는 다시 그 계절 속에 서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