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훈련
우리가 흔히 아는 '머스크 향'은 사실
수컷 사향노루의 생식기 냄새다.
수컷 사향노루가 교미기에 다가오면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특유의 향을 생식선에서 분비한다.
이 생식선을 잘라 건조시켜 향료를 추출하는 것이다.
머스크 즉, 사향은 대표적인 동물성 향료다.
찾아보니 사향노루는 아주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다.
요즘은 야생동물보호법으로 인해
천연 머스크향은 구하기 어려워,
대신 합성 머스크가 활용되고 있다.
다행인 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동물성 향료가 아닌,
식물성 향료에서 얻을 수 있는
머스크 노트를 소개해보려 한다.
이번 조향수업에서 시향한 천연 향료는 다음과 같다.
모두 베이스 노트로 분류된다.
암브레트 시드 (Ambrette Seed)
안젤리카 루트 (Angelica Root)
미르 (Myrrh)
프랑킨센스 (Frankincense)
벤조인 (Benzoin)
페루 발삼 (Peru Balsam)
바닐라 (Vanilla)
코코아 (Cocoa)
1. 암브레트 시드 (Ambrette Seed) | 베이스 노트
파우더리한 살 냄새.
은근히 느끼하고, 동시에 포근하다.
천연조향사들이 머스크 어코드를
구성할 때 빠지지 않는 원료다.
애니멀리하고 관능적인 뉘앙스를 담기에 적합하다.
머스크 노트 중 가장 좋아하는 향이다.
2. 안젤리카 루트 (Angelica Root) | 베이스 노트
첫 호흡에 상쾌함이 올라오면서
당귀 잎 같은 한약재 향이 퍼진다.
촉촉한 물내음 끝에는
동물의 털 냄새가 은은하게 남는다.
약간의 후추 냄새도 난다.
머스크 어코드에서 세련되고
남성적인 느낌을 표현할 때 쓰인다.
도시적인 느낌을 낼 수 있다.
3. 미르 (Myrrh) | 베이스 노트
홍삼캔디와 약초가 가득한 과학실의 냄새.
촉촉한 물기와 동굴 속의 시원함도 느껴진다.
매콤하면서 스파이시한 기운이 돈다.
가글, 치약, 무좀약 등에 잘 쓰이는 향이다.
명상할 때 사용하기 좋아서 '명상향'이라고도 불린다.
4. 프랑킨센스 (Frankincense) | 베이스 노트
익지 않은 초록 레몬 위에 후추를 뿌린 향.
피부 재생 제품이나
여드름 케어 제품에서 많이 사용된다.
가벼운 베이스로,
다른 향을 증폭시켜주는 조화제 역할을 한다.
5. 벤조인 (Benzoin) | 베이스 노트
연하고 부드러운 화이트 초콜릿 향.
밀키한 바닐라 향과 함께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을 준다.
자신의 향은 드러내지 않으면서
다른 향의 지속력을 끌어줘서
'완벽한 고착제'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많은 비율이 들어가면
탑, 미들 노트를 꽉 붙잡아서
오히려 향이 안날 수가 있다.
6. 페루 발삼 (Peru Balsam) | 베이스 노트
벤조인보다 개성이 강한 묵직한 바닐라 향.
살짝 탄내와 흙 내음이 나기도 한다.
미르 대신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소량만 사용해야 한다.
7. 바닐라 (Vanilla) | 베이스 노트
달콤하고 부드럽게 시작해
은은히 알싸한 여운이 남는다.
천연향료에서 가장 가품이 많은 향이다.
그저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향만 난다면
가품일 가능성이 높다.
비율은 적게 넣어야 하며, 향이 늦게 올라오는 편이다.
8. Cocoa (코코아) | 베이스 노트
만나는 용매제에 따라 향이 전혀 달라진다.
보류제와 희석하면 종이 냄새 또는
부드럽게 삶은 콩의 향이 은은하게 난다.
알코올과 희석하면 우리가 아는
다크초콜릿의 카카오향이 난다.
쌉싸름하면서 달콤한 다크체리 초콜릿 같았다.
조합되는 원료에 따라
완전히 다른 매력을 만들어내는 게 인상 깊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머스크 향에 대해
깊이 배울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흔히 '머스크'라 하면 떠올리는
바디샤워 제품의 피우더리한 향과는 달리,
머스크 노트 속에는
다양한 결의 향이 공존하고 있었다.
오늘도 향료 하나하나를 시향하며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향의 언어를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간다.
작은 차이를 구분하고 표현하는 훈련이 반복될수록
향에 대한 감각도 한층 더 정밀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