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조향
처음으로 오드퍼퓸을 기획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미지 조향'이라는
특별한 과제를 부여받고,
2주의 시간동안 향에 온 마음을 기울였다.
이미지 조향은 마음 속에 그려낸 장면을
하나하나 향으로 풀어내고,
보이지 않는 기억과 감정을
향기라는 언어로 옮겨내는 과정이다.
나는 그 여정을 따라 첫걸음을 내딛었다.
이미지 조향은 아래의 단계에 따라 진행한다.
[이미지 조향 단계]
1. 원하는 향의 컨셉 설정
2. 연상되는 이미지 선택
(나는 GPT를 사용하여 원하는 느낌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그림으로 만들었다.)
3. 핵심 키워드 추출
4. 키워드 별로 어울리는 색깔 지정
5. 해당 색깔에 따라 연상되는 향료 결정
(가장 고민이 깊어지는 단계.)
6. 향료 구성 및 비율 조정
7. 조제
8. 비율 또는 향료 수정
9. 최종본 완성
그리하여 탄생한 나의 기획안:
[제목] "초여름의 이불"
[컨셉] "갓 세탁한 이불 위에 드러누운 초여름 아침,
창문 틈으로 따스한 바람이 천천히 불어온다."
[주요 키워드] 이불, 초여름, 아침, 바람
키워드에 따라 연상되는 이미지를 작성하고,
그에 어울리는 색깔들을 배치했다.
색과 이미지에 어울리는 향료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여러 조합을 상상하고 직접 맡아보며
코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선택한 향료를 가지고 위와 같이 노트를 배정했다.
빨간색으로 칠한 프랜지파니와 자스민 삼박은
가장 강조하고 싶은 향으로,
이불의 뽀송함을 표현하는 역할로 지정했다.
고른 향들을 가지고 구성을 짜보았다.
향은 아래의 순서로 코에 닿도록 배치했다.
1. 초여름의 향
비터 오렌지로 오렌지 껍질을 깔 때 톡!하고
튀어나오는 상큼함으로 여름의 시작을 알린다.
페티그레인으로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풀 향과 잔가지, 흙내음 등 자연의 향을 담았다.
팔마로사로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신선한 풀 향을 표현했다.
2. 갓 세탁한 이불의 향
깨끗이 세탁한 이불이 주는 개운함은 라벤더로,
뽀송한 비누향이 퍼지는 순간은
프랜지파니로 그려냈다.
베이스 노트로는 자스민 삼박과 튜베로즈로
파우더리하고 포근한 뉘앙스를 주었다.
이렇게 따듯하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으로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수정을 거쳤다.
레몬을 비터 오렌지로,
카다멈을 페티그레인으로.
첫 구상으로 제조했을 때는 레몬과 카다멈이
지나치게 톡 쏘며 다른 향을 삼켜버렸다.
특히 레몬이 의외로 존재감이 강했다.
뽀송한 이불의 느낌을 더 강조하고 싶었던 나는
보다 부드럽고 조화로운
비터 오렌지와 페티그레인으로 향을 교체했다.
결과적으로, 예상했던 그대로의 향이 나왔다.
초여름의 바람을 타고 들어와
마주하는 포근한 흰색 이불.
조제 직후에는 향료들이
하나 하나 뚜렷이 존재를 드러냈지만,
2주 숙성을 거치자 하나로 둥그렇게 어우러졌다.
자연의 향과 뽀송한 포근함이 잘 표현되어 기뻤다.
생각보다 좋은 결과에, 이 향을 언젠가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무엇보다도 이 향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인
'정서적 안정감'과도 맞닿아있다.
언젠간 작게나마 세상에 공개할 수 있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초여름의 포근함을
선물처럼 전해주고 싶다.
다음 글에서는 번외로 기획한
"크리스마스 이브의 이불"향을 소개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