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주문하시겠어요~?"
요즘, 도심 속 음식점과 카페에서 듣기 귀한 말이다. 코로나19와 경기불황으로 키오스크 도입이 확대된 탓일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기계만큼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테이블들은 막역지우라도 되는 듯 다닥다닥 붙어있다. 최대한 간섭이 없을만한 곳을 찾지만, 명당은 이미 주인이 있다. 아직 비어있는 뒷자리의 간격까지 고려하며 의자에 앉는다. 직원만큼 무표정한 태블릿 화면과 마주하면, 미슐랭 셰프의 SNS를 보듯 맛깔스러운 음식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인기 있는 음식은 별도의 표시가 있어, 선택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수고스러움 마저 덜어준다. 키오스크에 익숙해진 요즘, 태블릿에 찍힌 지문과 땀의 흔적으로 진짜 인기메뉴까지 아는 지경에 이르렀다.
점심메뉴로 종종 돈가스를 먹곤 하는데, 내가 가는 식당엔 서빙을 로봇이 한다. 2년 동안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어 여적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실수 없이 서빙해 주어 불만 없고,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없어 불만이다. 몇 달 전, 돈가스에 같이 나오던 빵이 나오지 않아 이유를 알고 싶었지만, 알 수 없었다. 서빙하느라 바쁜 로봇을 잡아둘 수 없어 확인 버튼을 눌러 복귀시킨 후, 사람을 찾아 나섰다. 네댓 명의 사람이 보였지만, 로봇보다 바빠 보이는 모습에 쉬이 물을 수가 없었다. 요즘 음식점에서는,
"주문하시겠어요~?"라는 말만 귀해진 것이 아니었다.
키오스크와 서빙로봇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편리해진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두 가지 아쉬움도 존재한다. 첫째, 교감의 상실이다. 난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아현시장을 자주 갔었다. 장을 본 후, 시장 내 위치한 작은 식당에서 밥을 먹곤 했다. 난 식당사장님께 이모라고 호칭했고, 엄마와 이모는 정말 자매 같았다.
서로가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처음엔, 따뜻한 국밥은 엄마의 허기를, 국밥값은 이모의 주머니를 채우는 관계였을 것이다. 그러다, 엄마 손에 들린 장 본 물건, 엄마의 복장, 표정, 추가하거나 포장해 가는 음식 등에 대해 공감하며 대화했을 것이다. 학교 끝나고 가게로 달려오는 이모의 초등학교 딸, 초등학생을 키우며 공감할 수 있는 것들, 술 취한 진상 손님에 관한 에피소드 등의 대화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게 관심과 대화로 서로의 마음을 토닥이며, 마침내 엄마와 이모가 되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노인들이 느낄 자존감 하락과 소외감이다. 과거 농경시대에는 많은 경험을 가진 노인들을 공경하고 존중했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이제 중년의 사람들도 따라가기 힘든 속도가 되었다. 카페나 패스트푸드점에 가면, 키오스크 앞에 오래 서있는 노인들을 종종 보게 된다. 뒷줄에 사람이라도 있을 때면, 어김없이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멋쩍은 미소로 도움을 청하는 노인은 소수, 대부분 견디지 못한 채 가게 밖으로 나가버린다. 허기짐이 더해진 노약한 몸을 끌고 어디로 가셨을까, 여운마저 서글프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간다. 우리도 늙어간다.
문명의 발전은 효율과 편의를 제공한다. 우리는 더 중요할 수 있는 것들을 잃어간다.
비 내리는 주말, 곧 맑아질 하늘처럼 내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