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젓가락

쌍창의 여전사

by 파이민

꿈을 꾸었다.

난 어딘지 알 수 없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 서있었다. 불안함에 무작정 걷고 뛰기 시작했다. 차가운 어둠은 금세 내려앉았고 수풀이 우거진 길목에 접어든 순간, 번쩍이는 두 개의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어둠의 한 조각이 발광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커져가는 불빛과 공포가 뒤엉켜 난 눈을 질끈 감고 움츠러들었다.


"쾅!"


충격과 비명이 섞인 굉음이 일었다. 소리의 근원이 내가 아님을 인지하는 찰나 눈을 떴다. 눈앞엔 집채만 한 멧돼지가 창에 목이 꿰인 채 울부짖고 있었다. 순간, 두 번째 창이 그 짐승의 심장을 관통했다. 발광하던 두 개의 불빛은 어둠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쌍창을 양손에 쥔 여전사가 홀연히 사라지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영화 상영관을 나오면 벽면이나 에스컬레이터 부근에 큰 거울이 붙어있곤 하다. 소위,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대학교 강의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다. 진한 꿈을 꿀수록 꿈에서 깨고 난 후 멍- 해진다고 한다. '쌍창의 여전사'는 사실 내가 실제로 꾸었던 꿈은 아니다. 되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가 내겐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이야기이다.


요즘, 박보검과 아이유 주연의 '폭싹 속았수다'가 인기다. 보기 전 준비물이 충분한 휴지라고 하던데, 나 역시 눈물을 훔치며 보고 있다. 최근까지 봤던 내용 중, 양금명이 (아이유) 제주도 부모님 댁을 불쑥 찾아와 한동안 기거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서울에서 생활 중인 딸을 (양금명) 걱정하고 그리워하며, 적적함에 빠져있던 그들에게 불쑥 찾아온 딸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매일의 정성 어린 엄마밥상과 '진짜 방어' 같은 아빠의 먹거리 공세가 이어졌다. 너무도 행복해서였을까, 양금명은 철없이 투정 부리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즐기고 누렸다.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무심했던 아버지와 다르게, 어머니는 늘 세심하게 나와 동생을 챙겨주셨다. 식사를 할 때면, 나와 동생의 밥그릇엔 그날의 베스트메뉴가 수북이 쌓이곤 했었다. 엄마의 젓가락은 본인이 먹을 음식보다 우리에게 줄 것들을 집고, 찢고, 바르는 용도였다. 덕분에, 조기나 갈치 등의 생선을 숟가락으로만 먹을 수가 있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 닭고기도 부드럽고 맛난 부위는 같은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 네 식구 중 엄마의 젓가락만 그렇게 특별했다.


마치, 날 지켜주던 여전사의 쌍창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