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뛰어넘는 친구
"아빠 키즈카페 가자, 심심해~"
와이프가 출근하는 토요일, 종종 울리는 알람소리다.
"아빠는 배고픈데, 우리 짜파게티 먹을까~? 준비하는 동안 유튜브 좀 보고 있어~"
서둘러 알람을 끄고 주방 앞에 선다.
짜파게티 3봉을 꼬들과 불어팅팅의 중간쯤으로 끓인 후 그릇에 배분한다. 나 한봉 반, 아이들도 한봉 반.
그릇에 채워진 음식의 키는 아이들의 성장과 비례한다. 더하여, 부모의 노화도 알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새로운 키즈카페를 검색해 본다. 후기를 읽다, 사진 속 아이들의 미소에 시선이 머문다.
'아, 나도 저렇게 해맑게 웃던 시절이 있었는데..'
"태영아~ 노올자~!"
"연규야~ 노올자~!"
이른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골목은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로 뒤덮인다. 하교 후,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 아이들은 이산가족 상봉처럼 곳곳에서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렇게 집합이 끝나면, 게임을 정했다. 데일리 게임으로는 얼음땡, 딱지치기, 팽이치기, 1단 2단, 말뚝박기, 나이 먹기 등이 있었다. 기타 게임으로는 피구왕 통키가 유행했을 때, 배구공에 불꽃마크를 그려 넣고 했던 피구 정도가 기억난다.
아이들의 놀이지만, 그곳에도 서사와 승부가 있었다. 팀을 나눈 딱지치기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일궈낸 친구도 있었고, 과한 승부욕에 딱지를 치다 손톱을 땅에 부딪혀 아파하던 친구도 있었다. 팽이치기의 승부는 순서를 정하는 가위바위보에서 시작된다. 남들보다 늦은 순서를 차지한 후, '찍기'를 잘하면 무조건 유리하다.
강한 찍기 기술에 꼬다리가 부서진 팽이가 갑작스레 떠오른다. 찍기에 패인 곳을 촛농으로 메꾸던 모습도 생각난다. 반칙이던 고무팽이, 쇠팽이도 그려진다.
"태영아~ 그만 놀고 저녁 먹게 들어와~"
해거름 녘, 엄마들의 저녁식사 호출이 이어진다. 물론, 우리들에게도 그럴 때 등장하는 영웅이 또 있다. 잘게 부순 쇠고기라면을 검은 봉지에 담아 한 손에 쥐고 다니며 나눠주던 친구. 매워서 다 넣지 못하고 남은 스프는 친구들의 손바닥에 조금씩 뿌려주곤 했었다. 고사리손에 쌓인 스프를 혀로 콕콕 찍어먹던 그 맛이란..
돌이켜보니, 나의 유소년기는 어디를 둘러봐도 또래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혼자 노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수많은 아이들과 서사를 만들며, 풍성한 추억을 쌓고 단단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2024년, 우리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1학년은 두 개 반이 전부였다. 게다가 한 반에 인원은 스무 명 남짓이란다. 격세지감을 넘어 걱정이 앞선다.
키즈카페에 오니,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있다. 입장 전부터 들떠있던 우리 아이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다. 내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부모나 동성의 어른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며 수다도 떨고 핸드폰에 집중하는 존이다. 사실, 이곳은 어른들의 휴식터이다.
우리 아이들이 보인다. 온 동네 아이들이 모인 곳이라지만, 친분이 있는 아이는 거의 없다. 그래서, 이 넓은 곳에서도 둘이 놀고 있다. 격세지감을 넘은 걱정이 재차 올라온다. 안쓰러운 마음까지 일어나기 시작한다. 마음이 동하니, 몸이 움직인다. 어느새, 난 아이들에게 달려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다다르자, 이곳은 더 이상 키즈카페가 아니었다.
이곳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어느 한 골목이었다.
우린 친구가 되었고, 얼마지 않아 깐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