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신 지 세 달이 지났다. 아직도 엄마가 세상에 부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가끔 멍해질 때가 있다. 꿈꾸는 건 아닐까 싶은 순간이 계속 찾아온다.
엄마는 어느 날 입맛이 없다고 하시더니,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걷기가 어려워졌다. 병원에 가서 다시 암이 재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불과 석 달 전이었다.
치료가 잘 된 줄 알았던 간암은 다시 커졌고, 간의 다른 부위에도 새로 암덩이가 발견되었다. 복막으로까지 번져 왼쪽 하복부에는 8센티미터 크기의 종양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병원에서도 더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여명은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석 달 만에 엄마는 세상을 떠나셨다.
평생 소원이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죽는 것이라고 하시던 엄마였다. 엄마의 소원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남겨진 자식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향년 84세였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혼자 걷지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팔과 다리, 손에 힘이 다 빠져버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쉰에 홀로 되어 다섯 자녀를 키우고, 손주들까지 돌보며 늘 노인답지 않게 힘차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남의 부축 없이는 일어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되었다.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엄마는 스스로 알아차리신 듯했다. 그러나 누구도 작별의 말을 먼저 꺼내지는 못했다.
우리는 엄마가 낫기를 기도했다. 잘 먹어야 회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넘기지 못하는 음식을 억지로 권하기도 했다. 엄마 앞에서 울지도 않았다. 잘 먹고 다시 힘을 내서 같이 여행가자는 가망없는 말들을 해댔다. 사실은 나 자신이 믿고 싶어서 한 말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파에 앉아 초점 잃은 눈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던 엄마 곁에 앉았다. 나는 엄마의 무릎을 끌어안고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참아왔던 눈물이었기에 한번 흐르자 멈추지 않았다. 엄마는 처음에는 내 등을 쓸어내리며 달래주었다. 그러나 내가 울음을 멈추지 않자 말씀하셨다.
“니 나이 환갑이 다 되도록 살았으면 됐지 뭐가 그리 슬프노?”
엄마는 늘 나이를 올림으로 계산하셨다. 마흔이 넘으면 곧 쉰이라 하셨고, 쉰을 넘기자 곧 환갑이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내 나이가 예순이 다 되었다는 말씀은 그리 놀랍지도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더 오래 살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라도 더 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과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울면서 말했다.
“엄마, 그러면 진짜 내 나이 예순 될 때까지만 살자. 응, 그때까지만 살아줘.”
집으로 돌아온 지 한 달쯤 지나면서는 말씀도 잘하지 못했고, 먹는 것도 힘들어졌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삶을 붙잡으려 애쓰셨지만, 결국 거기까지였다.
엄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각기 다른 말을 했다.
어떤 이는 그정도 살았으면 충분히 살았다고 했다.
어떤 이는 자기는 어머니가 여섯 살 때 돌아가셨고, 새어머니 밑에서 구박을 받으며 살았다며 그에 비하면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라며 왜 엄마 얘기 할때마다 우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또 나이 마흔에 엄마를 잃은 어떤 이는 엄마의 죽음 앞에 하도 오랫동안 슬퍼하니 지인이 “마흔이나 먹고 엄마 돌아가셨다고 그렇게 슬퍼하냐”고 핀잔을 주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엄마의 죽음을 눈물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라는게 존재하기라도 하는 걸까?
엄마는 언제나 내 삶의 단단한 뿌리였고, 어둠을 밝히는 빛이었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시면 내 세상도 함께 밝아졌고, "괜찮다"는 엄마의 한마디는 정말로 모든 것을 괜찮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세상이 남긴 허망함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몇 살이 되면 그런 엄마의 죽음이 슬프지 않을까? 아마 그런 나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떠올릴 때마다 저항없이 눈물이 터지고,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기 버거운 모든 순간마다 내 마음은 찢어진다. 살아계셨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지 생각할 때마다, 엄마가 좋아하는 장미를 볼 때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몸서리를 친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그 말이 진짜 맞았으면 좋겠다. 오롯이 슬픔과 눈물로만 드러나는 이 그리움과 상실감이 언젠가는 사랑하는 엄마를 추억하는 미소로 대체되면 좋겠다.
그 때까지는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워하면서 엄마를 추억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