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회복지원금 뉴스를 보다가 엄마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지원금 받으면 우리도 저거 하까?”
2020년 5월, 코로나19 팬데믹 때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소식에 엄마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뭐? 엄마 뭐하고 싶은데?”
“저거 있다 아이가. 사람들 하는 거.”
엄마는 쑥스러운 듯 말을 흘리셨다. 마침 TV에서는 ‘재난지원금 기부’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아~ 기부? 엄마, 기부하고 싶으신 거구나.”
엄마와 나, 둘이 살고 있던 우리는 60만 원을 받게 될 예정이었다. 원래 반띵하기로 했던 터라, 나는 엄마가 원하시면 30만 원을 기부하고, 나머지는 엄마가 가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라믄 니만 손해다 아이가…” 엄마는 말끝을 흐리셨다.
“아냐. 난 그 돈 없어도 돼. 엄마 마음 가는 대로 다 해요."
내가 괜찮다고 하자, 엄마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도 있으면 남들한테 베풀면서 살고 싶지."
돈이란 걸 넉넉하게 소유해 본 적이 없으셨기에,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돈이 생기자 그동안 마음뿐이었던 일, 돈으로 기부하는 게 하고 싶으셨던 거다.
엄마의 절약 정신은 남달랐다. 두루마리 휴지 한 칸도 허투루 쓰지 않으셨고, 일회용품은 씻어 다시 쓰셨다. 정수기도, 생수도 없었고 대신 물을 끓여 보리차를 내셨다.
겨울이면 집이 남향이라 볕이 잘 들어 안춥다며 보일러를 아끼셨고, 여름에는 가만히 집에 있으면 안덥다며 에어컨을 거의 켜지 않으셨다. 친구들이 노인일자리를 나가 돈을 벌 때, 엄마는 일하지 못해 아쉽다고 하셨지만, 대신 아낄 수 있는 모든 걸 아끼며 살아오셨다. 그 모든 절약은 자식들이 주는 돈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신념, 손주들에게 마음껏 해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남을 돕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엄마는 늘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셨다. 고마움을 보답할 때도, 아픈 사람이 있을 때도, 그냥 안됐다 싶은 사람을 볼 때도 항상 뭔가를 준비해 나누셨다. 주로 음식을 만드셨는데, 그중 단연 최고는 메밀묵이었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받은 사람은 늘 감동했다.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어서 선물하신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손이 많이 가도 비용은 많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의 삶 전체가 그랬다. 돈을 쓰는 대신 마음과 시간을 썼고, 그 마음은 늘 넉넉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시고, 새마을금고 통장을 정리하다가 수천만 원이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용돈도 제대로 못 드렸는데, 어떻게 그 돈을 모으셨을까.
엄마는 그 돈을 어떻게 쓰라는 말씀조차 남기지 못한 채 급격히 기력이 쇠하셨다. 남겨진 통장의 돈을 어떻게 할지는 우리 형제들이 결정해야 했다. 우리는 넉넉하게 드리지 못한 자식들이었기에, 더 잘해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무엇보다 컸고, 그만큼 누구도 그 돈을 욕심낼 수 없었다.
엄마라면 그 돈을 어떻게 쓰기 원하셨을까를 생각하며, 의논 끝에 우리는 유산을 나누는 대신 ‘할머니 장학금’을 만들어 아이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통장의 이름은 엄마의 성을 따서 '버들재단'이라고 지었다. 그 돈은 손주들이 학교를 졸업하거나 새로운 길을 시작할 때, 결혼처럼 삶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살아 계셨다면 기꺼이 내어주셨을 할머니의 마음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 통장에 우리 형제들의 마음도 모으기로 했다. 엄마의 유산이 손주들의 앞날을 밝혀 주듯, 아껴가며 차곡차곡 모아질 우리의 마음도, '엄마의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러고 보면 엄마가 남기신 건 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씨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