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짜노”
가망없는 엄마 상태, 그래서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친구가 말했다.
’그러게, 우짜지? 이제 우짜지?‘
슬픔과 황망함, 두려움으로 가득찬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 한마디에 나는 무너졌다.
우리는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엄마 간병을 위해 집으로 내려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이들에게는 어쩔수 없이 엄마 투병 소식을 전해야만 했다.
“그 연세 되면 기력 없어지시고, 돌아가시고 그런거지 뭐. 다들 그래.”
다들 그렇다고? 그 '다들'에서 우리 엄마는 빼줄래?
“요양원에 계신 우리 어머니는 아흔이 넘으셨는데 오늘 내일 하세요. 그래서 장례식 어떻게 할지 알아보고 있어요. 이제 미리 미리 준비해야 돼요.”
우리 엄마는 아흔 근처도 못가셨거든요. 당신이나 미리 준비하세요.
악의가 없는 줄 알면서도 내 마음에 악다구니가 차올랐다.
죽음이 보편적인 삶의 과정이라는 걸 알지만 '우리 엄마'의 유일무이한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내게는 상처가 되는 말들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이제 엄마는 아프지도 않고 좋은 곳에 계신다. 천국에서 예수님과 함께 계시니 이 땅에서 사는 것보다 더 좋은거지”였다.
천국에서 행복하실텐데 슬퍼하면 믿음이 없는... 그래도 엄마, 너무 보고 싶어. 한번만 안아보고 싶어.
“그래도 자식들 고생 오래 안시키고 돌아가신게 다행이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잖아.“
엄마가 돌아가신게 어떻게 다행일 수 있어? 나는 엄마가 조금만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시기만 하면 좋겠어.
“가까이 있으면서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돌보면서 보낼 수 있었으니 니가 복이 많다.“
그런 복은 하나도 안 반갑다고. 엄마가 살아 있는 복으로 바꿔달라고.
“니가 이렇게 우는 거 엄마도 원하지 않으실 거야.“
물론 엄마는 원하지 않으시지. 내 표정이 살짝만 안좋아도 얼마나 걱정하셨는데. 그래도 눈물이 자꾸 나는걸 어쩌라고.
나도 안다. 다 맞는 말이고, 위로하려고 한 말이라는 거, 공감해 주려 한 말이라는거. 하지만 그 말들이 위로가 안됐고, 공감받는다는 느낌은 더더욱 없었다.
그렇다고, 더 울어라, 마음껏 슬퍼해라 말하는 것도 마뜩찮았다.
내가 그런 마음들을 다 표현했다면 조문객들은 ’그럼 뭐 어쩌라고?‘라고 짜증을 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겠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될 수 있었는지. 어떤 공감이라면 마음을 기댈 수 있었을지.
뻔한 위로와 공감이 별 도움이 안되는 걸 경험하고 나서 나는 내가 했던 말들을 생각해 봤다. 나는 공감 잘하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종종 받는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랑 대화하는 게 편하다고 하고, 내 공감과 조언이 힘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진짜인줄 알았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암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코로나 확진을 받고 위독한 상태라며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얼마 못버티실 것 같으니 기도해 달라고 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고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공감과 위로를 건넸다. 친구는 고맙다고 했다.
엄마와 마지막 시간을 보내며, 세상에 이렇게 몸서리치도록 무서운 슬픔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엄마가 없는 세상. 나는 정말 너무 무서웠다.
'사람들은 이런 슬픔을 어떻게 견뎌내며 살아갈까?'
그 친구가 생각이 났다. 내가 건넨 위로와 공감의 말들.
나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위로라는 걸 했다. 함부로 공감했다.
장례식장에 온 친구에게, 그 때 내가 뭣도 모르고 얘기한것 같다고, 함부로 아는 척 했다고 사과했다.
“그땐 직접 겪은 건 아니었으니까..”라며 괜찮다고 했다. 내 위로가 도움이 안된 게 확실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미처 연락하지 못한 엄마 친구분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엄마 핸드폰을 열었다.
"어, 친구야. 오랜만이네. 잘 지내재?"
엄만줄 알고 반갑게 인사하신다.
“... 아, 안녕하세요, 저는 OOO 딸인데요.”
“아, 그래요? 안그래도 요새 통 연락이 없어서 궁금했는데. 어디 아파요?”
“… 아뇨.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응? 돌아가싰다꼬? … 아이고 우짜꼬~”
친구분은 한참을 우셨다. 나도 울었다.
'우짜꼬'
황망한 그 외침 안에 다른 말로 대신할 수 없는 공감이 있었다.
내 말이. 우짜꼬.
그 무력한 한마디가, 내가 받은 가장 큰 공감이고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