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는 길, '장모님 밥상'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 밥상이 그리운 나는 순간 멈춰 섰다. 장모님도 누군가의 어머니니까, 크게 다르지 않겠지 하는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입구에 붙여놓은 메뉴판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돼지김치찌개, 고추장 멸치조림, 콩나물무침... 엄마가 해주시던 바로 그 음식들이었다. 홀린 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 몸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달랐다. 저탄수화물 식단을 고수하며 흰쌀밥은 거의 먹지 않았고, 반 공기도 채 비우지 않았다. 외식 음식은 짜고 자극적이라 몸에 좋지 않다는 생각에 특히 찌개류는 멀리했다. 그런 음식은 집에서나 먹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당연했던 엄마의 찌개가 더 이상 당연한 것이 되지 않게 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요즘은 찌개나 백반 같은 집밥스러운 메뉴만 봐도 이성을 잃고 눈이 돌아간다.
한동안 먹고 싶었던 돼지김치찌개 정식을 주문했다. 달걀후라이를 비롯한 몇 가지 기본 반찬이 나오고, 추가로 상추와 고추, 마늘 그리고 몇몇 반찬은 셀프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서랍에서 수저를 꺼내 세팅을 한 후, 셀프 코너에서 상추와 청양고추, 마늘, 쌈장 그리고 파김치를 듬뿍 담아왔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맛본 파김치가 정말 맛있었다. 추가 메뉴로도 파는 걸 보니 인기가 많은가 보다. 나중에 집에 갈 때 좀 사갈까? 고기 주문하는 사람들한테만 파는 건가?
그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빨갛고 기름진 김치찌개, 정갈하게 담긴 반찬들. 고추장 멸치조림, 콩나물무침, 콩자반, 애호박볶음, 오징어젓갈, 고추된장무침까지. 엄마가 해주시던 바로 그 반찬들이 내 앞에 차려졌다.
상추를 손바닥에 펼쳐놓고, 김치찌개에 졸여진 기름지고 두툼한 돼지고기 한 점, 쌈장에 찍은 마늘 한 조각, 가위로 작게 자른 청양고추 두어 조각을 올린 후 쌈을 싸서 한 입에 넣었다.
그 다음은 숟가락 가득 담은 흰 쌀밥에 찌개에 졸여진 김치를 듬뿍 얹어서 크게 한 입.
그리운 맛이었다.
결국 밥과 반찬은 물론이고 김치찌개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워버렸다. 맛있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먹고 나니 당혹스러웠고 조금 부끄럽기까지 했다. 빈 그릇들이 늘어선 식판을 보고 있자니, 묘한 자괴감이 몰려왔다.
왜 이렇게 허겁지겁 먹었을까.
음식은 분명 맛있었고, 배도 부르다. 식당에서는 더 뭐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하지만 왜 여전히 허기가 느껴지는 걸까. 배는 부른데 마음은 텅 빈 듯 허전했다.
슬픔 비슷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얼른 식당을 나왔다.
"혹시 집에 김치 남은 거 있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 집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언니에게 동생이 묻는다.
"아마 조금 있을 걸." 대수롭지 않은 듯 언니가 답한다.
"그럼 엄마 김치 이제 마지막이야? 다 먹었어?" 내가 물었다.
"응. 지금 남은 게 마지막이야. 엄마 김치냉장고는 다 비운 지 오래됐고, 지금 있는 것도 우리 집에 있던 거 가져온 거야."
침묵이 흘렀다.
"엄마 흔적이 하나씩 사라져 가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주인과 냉장고 속 음식들만 바뀌었다. 정확히는 비워졌다. 엄마가 없는 집에는 엄마의 김치도, 엄마가 직접 담근 간장과 된장도, 멸치 액젓도 다 사라져가고 있다.
엄마 집밥은 이제 먹을 수 없다.
추석이 다가오고, 김장철이 다가온다. 엄마 없는 이 계절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김치는 이제 사먹어야지."라고 말하는 언니에게 서운한 감정까지 들었다.
김장은 우리 가족에게 설, 추석 다음으로 중요한 연중 행사였다. 배추는 절인 것으로 샀지만 양념은 엄마가 직접 만드셨다. 기장멸치로 액젓을 담그고, 고춧가루는 농사짓는 분에게 직접 사고, 재료 하나하나 엄마가 직접 시장에서 구매해 오셨다. 양념을 큰 냄비에 만들어 두면 우리는 모두 모여서 함께 김치를 치댔다. 각자 가져온 통에 얼마씩 담아서 갖고 가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었다. 당연히 저녁은 김장김치와 수육파티였다.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지금, 우리 가족의 중요했던 연례 행사도 같이 사라져야 하는 걸까?
모두들 김치를 제대로 담가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 총대를 매면 열심히 돕겠다는 마음이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지는 못한다. 망칠까 봐.
허기가 멈추지 않는 이유가 분명해졌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허전해서였다.
아무리 밥을 먹어도, 김치찌개 국물을 끝까지 비워도, 엄마에 대한 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안먹어도 배부를 때가 있다. 하지만 마음이 허하면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다.
내가 채우려고 하는 것은 엄마가 떠난 빈자리, 그 공허함을 음식으로 메우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더 이상 안 계시다는 것은 현실이다. 폭식을 한다고, 눈물을 흘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여전히 사랑하는 형제들과 조카들이 있고, 우리는 모두 허둥대고는 있지만 뭔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추석이 코앞이다. 외식을 할까, 음식을 사다 먹을까, 간소하게 할까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엄마의 탕국과 나물을 좋아했던 우리 형제들, 할머니의 전과 튀김을 좋아했던 우리 조카들을 위해 이제는 엄마 흉내라도 내면서 음식을 준비하려고 한다.
엄마 없는 계절은 낯설고 아프다. 하지만 결국은 적응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살 길을 찾게 될 것이다.
혹시 이러다 진짜로 요리에 재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엄마의 사랑을 이어받아, 이번에는 내가 누군가의 허기를 달래주는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