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우리한테 이런 일이

by 길손

“엄마 간암이래.”
엄마와 함께 병원에 다녀온 언니가 형제 단톡방에 남긴 짧은 문자였다.


엄마는 몇 해 전 간경화 진단을 받으셨다. 언젠가 간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지난해 검사에서도 암일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전전긍긍했지만, 다행히 결과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 있다고 막연히는 생각했지만, 막상 그 문자를 읽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곧바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하나님, 왜 이러세요? 우리가 뭘 잘못했나요?”

기도도 했고, 신앙생활도 착실히 했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


특별하다고 믿었던 착각

죽음이 낯선 건 아니었다.
아빠는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일이라 마음의 상처는 어느 정도 옅어져 있었다.

엄마의 간암 진단은 달랐다.
“자식들 고생시키면 안 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시던 엄마는 먹고 싶은 것도 참고, 병원 권장대로 철저히 식단을 지켰다.

그런 엄마가 암에 걸렸다는 건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충격은 더 컸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에도 암은 비켜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이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히 보호해주시지 않았다.


하나님께 대든 밤들

엄마 투병이 시작되면서 나는 밤마다 하나님과 씨름했다.

“왜 하필 우리 엄마예요?”
“평생 남 돕고 착하게 살아온 엄마가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해요?”

기도하면서도 원망했고, 원망하면서도 기도했다.

하나님 말고는 매달릴 곳이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었다.
남편에 이어 스물여섯 살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진 그는 수녀원에서 밤새 기도하며 이렇게 매달렸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달라.”

그때 수녀 한 분이 조용히 물었다.

“왜 그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면 안 되는 거죠?”

박완서는 그 문장이 자신의 마음에 일으킨 균열을 고백했다.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맞다. 왜 우리에게만 일어나면 안 되지?

기독교인이라서?
착하게 살았으니까?
기도했으니까?

욥도 이유 없는 고통을 겪었고,
예수님조차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셨다.


그때부터 기도가 달라졌다.

“하나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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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발견한 은혜

원망을 내려놓으니 조금씩 보였다.

엄마 곁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오가며 차 안에서 나눈 옛날 이야기들.
소고기를 먹으러 갔던 날, 장미정원을 함께 걸었던 날.
엄마와 나눴던 모든 시간이 특별했다.


엄마의 마지막 3개월은 집에서 간호했다.
24시간 곁을 지키며,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엄마를 사랑했다.
그 시간은 힘들었지만 동시에 축복이었다.


올해 5월, 엄마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나는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기적을 구했다.

“제발, 5년만. 5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엄마도 언젠가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실 분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엄마를 떠나보낸 지 넉 달이 지났다.

여전히 엄마가 보고 싶어 울 때가 많다. 특히 밤이면 더 그렇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님께 투정을 부린다.

"너무 일찍 데려가신 거 아닌가요? 5년만 더... 아니 1년만 더라도 시간을 주시지 그랬어요."


믿음이 있어도 아픈 일은 생긴다. 기도해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나라고 예외가 아니다.

박완서 작가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통은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고통과 더불어 살 수 있게는 되었습니다."


나도 그런 것 같다. 갑작스럽게 엄마를 잃은 슬픔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그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걸 받아들였고, 지금도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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