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이쁜 것

by 길손

저녁 5시반.

1층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벨이 두 번 울린 후 들리는 목소리.

"어, 우리 딸. 퇴근 했나?"

"응. 이제 막 사무실 나왔어."

"집에 가서 전화하지. 위험한테 길거리 다니면서 전화하지 말고."

중년이 된 딸에게 엄마는 애기 다루듯이 말씀하신다.

"아냐, 괜찮아. 엄마 오늘은 어떻게 보냈어?"

"오늘 철이 엄마가 쪽파를 잔뜩 갖고 왔더라. 고마워서 남양반점 가서 같이 짜장면 한그릇 먹고 놀다가 보냈다. 이제 파김치 담글라고."

"철이 엄마 아지매는 매번 그렇게 먹을 걸 갖고 와주시네. 고맙게."

"그래. 고맙지. 항상 고맙다.'

"파김치 맛있겠다. 나도 먹고 싶다."

"담아서 보내주까?"

"아니, 번거롭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조만간 내려갈께. 그때까지 다 먹지 말고 조금만 남겨줘."

"알았다. 남겨 놓으께. 우리 딸 몸 조심하고 밥 잘챙겨무라이. 니도 인제 건강 챙겨야 될 나이다."

"어. 맞다. 건강챙겨야지. 밥 잘 챙겨먹으께. 걱정마세요."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래이."

"응. 엄마. 내일 또 전화할게요."

"우리 딸 사랑해."

엄마가 나를 '우리 딸'이라고 부르는게 나는 좋다. 따뜻하고 사랑받는 느낌이다.

"응. 나도."

'나도 사랑해.'라고 문장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과 달리 '사랑해'가 잘 안나온다.

엄마가 먼저 '사랑해'를 해 주어서 '나도'라는 말로 퉁치면서도 뜻을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 인자 전화 끊자."

"응."

통화가 끝나도 엄마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나는 전화기에 귀를 대고 있다.

전화를 끊기 전 엄마의 혼잣말이 들린다.

"아이고 이쁜 것"

마음이 몽글몽글해진 내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얼마나 예뻤는지 항상 자랑하셨다.

"어렸을 때 얼마나 이뻤는지 말도 못했다. 아빠 닮아서 피부도 하얗고 얼굴이 얼마나 이뻤다고."

이 말을 들으면, 내가 진짜 그렇게 예뻤을까하는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남아있는 사진이 없어 확인이 불가능한 게 아쉽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뻐한다니 그런 거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엄마는 나 말고 언니나 동생에 대해서는 그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니 그게 진짜였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내가 어렸을때 얼마나 이뻤는지 엄마가 항상 말씀하시던 에피소드 한토막.

읍내에서 마을을 방문한 사람이 있었다. 나를 보고 너무 아이가 이쁘다며 한번 안아봐도 되겠냐고 했단다.

엄마는 그러시라며 아이를 안겨줬는데 그 때 마침 옆집에 살던 엄마의 육촌 시누이가 집으로 들어왔다.

"야야, 니 지금 뭐하고 있노? 아를 데리고 도망가믄 우짤라꼬 다른 사람한테 안겨주노?"

고모는 그 사람 앞에서 대놓고 이렇게 말하며 엄마를 혼내키셨다고 한다.

이쁜 아기라서 대놓고 유괴하는 것이 그 때는 가능한 일이었을까?

이 이야기를 나는 수 십번도 더 들었고,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래도 그 이야기는 과거형이었다. 지금 이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때는 그렇게 이뻤는데 지금은 어쩌다가'하는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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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아셨다. 지금은 내가 그때처럼 예쁘지 않다는 걸.

그럼에도 엄마는 여전히 나를 '아이고 이쁜 것'으로 부르셨다.

그건 그냥 사랑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엄마곁에 24시간 붙어서 병간호 할 때도 엄마는 '우리 이쁜딸을 내가 고생시켜서 우짜노?'하셨다. 거기엔 내가 좋아하는 말이 다 들어 있었다.

'우리 딸'

'이쁜 것'




아직 엄마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매일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마다 뜨는 엄마의 사진도 그대로다.

이제는 통화할 수 없지만, 가끔 즐겨찾기 화면을 열어 그 얼굴을 본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힘겨운 날이면 여전히 내게 말씀하실 것 같다.

'우리딸, 힘내라. 아이고, 이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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