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기독교로 개종했다

by 길손

"나도 교회 가보까?"

나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면 좋지. 이번주부터 같이 가까?"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이 예순이 넘어서 자발적으로 교회를 가겠다고 하신 것은 아들들이 늦은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는 답답함 때문이었다. 혹시 교회를 다니면 상황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교회를 다니기로 결심한 것, 하나님을 믿기로 결심한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뿌리깊은 유교사상과 무속신앙의 실제적이고 다양한 경험들을 갖고 있는 엄마에게 그건 그냥 일요일에 교회라는 건물에 가 보는 그 이상의 일이었다.






예전 시골 마을의 대부분 집들처럼 우리 집안은 대대로 유교전통과 무속신앙이 혼합된 집안이었다. 일년에 열 번이 넘는 제사와 차례를 지내고, 곤란한 상황이나 질병이 찾아오면 병원으로 가기보다 굿을 먼저 하는 집안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효험이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가 써래질 하다가 갑자기 다리가 아프다며 주저 앉아 버렸다. 그 이후로는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해서 겨우 걸었는데, 당연히 일은 못했다. 그 때 아버지의 나이는 서른이 채 되지 않은 때였다. 좋다는 약은 다 찾아다니며 먹여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 이종사촌 누나가 집을 방문했다. 조카의 상황을 듣고, 손을 꼬물꼬물 하더니 목신이 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엄마에게 할 일을 알려 주셨다.

"질부야, 나물을 깨끗이 장만하고, 명태랑 조기를 한 마리씩 사서 마당에 있는 배나무 밑에 갖다 놔라."

그리고 준비가 되면 연락을 하라고 했다.


그때 우리 집 뒷마당에는 큰 배나무가 있었는데, 그 가지 중 일부가 옆집으로까지 뻗어 있었다. 가지 침범을 당한 집에서는 그것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지를 베어버렸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가 왜 남의 집 나무를 말도 없이 베었냐며 언쟁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이종사촌 누나는 나무를 베더라도 아무 말 하지 말았어야 한다며, 그것 때문에 목신이 들어서 아버지 다리가 아픈 거라고 했다.


엄마가 나물과 생선을 정성껏 준비해서 배나무 밑에 갖다 두고 고모님께 연락 드렸다. 그날 저녁에 고모님이 나무 밑에서 손을 비비고 나서, 아버지는 바로 지팡이를 버리고 걷게 되었고, 다시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신기하더라."




이 외에도,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다가 나은 이야기, 눈에 염증으로 실명할 위기에 놓였는데 점쟁이를 통해 회복된 이야기, 아이가 경기를 심하게 해서 도저히 감당이 안됐는데 굿하고 나은 이야기 등등 수많은 무속신앙의 간증을 들려주었다.



엄마가 교회를 다니겠다고 결심할 당시 우리 집에는 안방에 신주단지가 모셔져 있었고, 방마다 입구에 부적이 붙어 있었다. 영적인 세상에 대한 경험이 있는 엄마는 더 크고 능력 있는 신을 모시기 위해 교회를 가긴 하지만, 그 전에 섬기던 다른 신들의 능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신주단지를 치우고 부적을 떼는 일을 직접 하는 것을 두려워 하셨다. 교회 목사님께 직접 와서 예배를 드린 후, 그 일을 해 주시기를 요청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했고, 그 이후로 신주단지, 부적 뿐 아니라 당시 새로 산 제사용 목기 세트를 포함해서 미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버렸다.






무속신앙의 효험을 수 없이 경험해 본 엄마지만 매번 그렇게 빌고, 정성 들여 음식 준비해서 나무 밑에, 산 위에, 돌 밑에 놓고 비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 속박들이 두렵고 또 언제 그런 일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들이 힘들었다고 했다.



"인자 그런 거 안해도 되니 얼마나 좋은 지 모른다."


아들들의 결혼은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수 많은 '금기사항'들에 매이지 않는 진짜 자유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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