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아기처럼 돌볼 수 있어서

by 길손

병원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퇴원을 결정했다.

여명은 3개월에서 6개월.

남은 생애를 병원에서 보내는 것보다,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엄마도 원하실 거라는 우리끼리의 결정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명 이야기를 끝내 엄마에게 꺼내지 못했다.

엄마가 절망에 빠질까봐 두려웠지만 지금와서 돌이켜 보니 솔직하게 얘기를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은 후회와 죄송스러운 마음도 든다. 솔직하게 얘기를 했더라면, 엄마는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는 자신의 상태가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셨음에도, 혹시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러 노력을 하셨다. 혼자 걷는 연습, 혼자 밥 먹는 연습.

마치 아기 같았다.


아기가 첫 걸음을 뗄 때. 두어 발자국 밖에 못 떼도 부모들은 세상을 다 가진 것 처럼 기뻐한다. 아기가 혼자 숟가락에 담긴 음식을 입으로 가져 가는 순간 환호성이 터진다. 비록 숟가락에 담겨진 음식이 입 앞에서 다 흘러버려도. '분명 입에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안들어왔네'하며 당황해 하는 아기를 보며 하하 호호 웃음이 터지고, 엄마는 아기 입에 먹을 것을 잽싸게 넣어준다.

아기의 어설픈 걸음마와 실속없는 밥먹기는 희망의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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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걸음마와 밥먹기는 슬픔의 그림자였다.

엄마가 혼자 몇 발자국이라도 걸으면 우리는 박수치며 환호했고, 식사하실 때 숟가락으로 혼자 밥 먹는 걸 성공하면 너무 잘했다며 칭찬해 주었다. 우리는 웃으며, 환호했지만 그건 애써 눌러둔 슬픔이었다.


엄마의 밥상은 점점 아기 밥상으로 바뀌어 갔다. 물컵은 사기컵에서 유아용 양손잡이 실리콘 컵으로 교체 되었다. 스테인레스 젓가락은 아기들 연습용 플라스틱 젓가락으로 바꾸었다. 밥그릇, 숟가락 다 바뀌었고, 미처 씹지 못해 뱉어내는 음식들을 담는 그릇도 구비되어 있었다.


걸음마도 점점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보행보조기를 샀지만 일주일만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곧 집 안에서도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다. 사실, 그 휠체어를 빌릴 때는 봄꽃 구경 하려고 빌린 건데, 한 번도 바깥에 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엄마의 시계는 거꾸로 흘러 차츰 아기가 되어갔다. 손과 다리는 점점 더 힘이 빠져갔다.

물컵을 들다가 놓치기 일쑤였고, 다리에 힘이 풀려 혼자 일어서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제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변기 손잡이를 설치했지만 자꾸 기울어지는 몸과 힘이 빠진 팔에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기저귀와 배변패드가 필요해졌다.


엄마는 아기가 되었다.

먹는 것, 씻는 것, 배변 처리까지 모두 침대에서 돌봐야 했다.

자녀 다섯을 키우고, 손주들까지 다 키워내신 우리의 강인하고 똑 부러지던 엄마는 이제 갓난애기처럼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그토록 든든했던 엄마가, 이렇게 무력한 아이처럼 내 앞에 누워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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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건 현실이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엄마를 돌보기로 했다.

유기농 식재료를 구매하고, 부드럽게 삼킬 수 있는 고영양 식사를 준비하고, 기저귀를 수시로 확인해서 바꿔주고, 물수건으로 몸 구석 구석 닦아 주고, 아름다운 찬양을 틀어 주고, 성경을 읽어주고. 수시로 손과 얼굴에 뽀뽀를 해 주며 사랑한다 말해주고.


아기가 된 엄마를 돌보며, 엄마가 우리를 키울 때도 이런 수고를 하셨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지금 엄마의 죽음 앞에서도 엄마를 돌볼 수 있는 게 기쁨인데, 엄마는 아기였던 나를 돌보며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이 역전된 돌봄의 시간을 통해 신기하게도 엄마의 사랑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우리 형제들은 매일 저녁마다 엄마를 찾아왔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했다. 아무 대답 없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와의 추억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엄마를 안아주고 기도해 주었다. 손주들도 일주일에 서너 번씩 와서 할머니에게 사랑한다 말해주고, 뽀뽀해 주고, 기도해 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엄마를 돌보았다. 마음을 다해 엄마를 사랑해 주었다.

평생 어릴 때 받지 못한 사랑에 대해 서글퍼 하던 엄마. 그 어린 엄마의 텅 빈 마음까지 다 채워주고 싶었다.


아기가 된 엄마를 정성들여 돌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축복이었다. 힘들었지만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엄마는 그 마음이 채워진 채 떠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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