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테레비로 편안히 다 볼 수 있는데 뭔 여행이고? 돈만 많이 들고 피곤하다.”
엄마의 첫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나에게 호통치듯 말씀하셨다.
딸의 지갑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피곤한 여행따위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은 그렇지 않았다.
한 번도 나라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엄마였지만 ‘걸어서 세계 속으로’ 애청자였고 그야말로 안 가본 나라가 없었다.
“저기는 문어를 오래 삶네. 그래도 안 질긴가?”
“저런 비탈진 데서 염소들이 잘도 걸어다니네.”
매번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감탄을 연발하던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꼭 해외여행 시켜드려야지. 하지만 늘 바쁘다는 이유로 그 다짐은 뒤로 밀렸다.
퇴사를 하게 된 날. 나는 엄마와 해외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었다.
우선 여행지 선택.
칠순이 되신 엄마 연세를 고려해서 장거리는 피하되 충분히 이국적인 곳이어야 했다. 사람들의 외모가 우리와 비슷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인 비율이 높은 곳은 제외하고 나니 필리핀, 태국, 베트남 정도가 남았다.
나는 태국을 선택했다.
마일리지로 업그레이드해서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을 예약하고, 최고급 호텔에 기사 포함된 렌트카까지 예약했다. 첫 해외 여행이 한 순간도 힘들지 않게, 모든 순간이 좋았다고 기억되길 바랐다.
방콕에서는 유명 관광코스와 고급식당, 특이한 식당들을 두루 다녔다. 때로는 렌트카 기사님과 함께, 때로는 가이드와 함께 식사도 하면서 현지인 경험도 하게 해 드렸다. 저녁에는 쇼를 보러 다녔고, 피곤할 즈음에는 마사지도 받으러 갔다.
여행기간 중 하루는 파타야로 다녀왔다. 배를 타고 다다른 어느 섬. 에메랄드 빛 바다를 마주하며 시원한 코코넛 한잔을 마셨다. 두 손으로 다소곳이 코코넛 열매를 받쳐 들고 빨대로 코코넛 주스를 마시며 미소짓는 엄마 모습을 보며 가이드가 “미스 코리아!”하면서 엄지척을 했다. 웃음이 터졌다.
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는 제트스키를 타는 것이었다. 내가 맨 앞, 엄마가 내 뒤, 그리고 안내원이 맨 뒤에 앉았다. 갑자기 부웅~하고 스키가 나가는데 내 혼도 같이 나갔다. 앞에 있는 다른 제트스키들과 부딪힐까봐 조마조마했고, 그걸 피하고 나면 또 다른 장애물이 등장하기 일쑤였다. 제트스키를 타는 내내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진정시키고 제트스키에서 내렸다.
“아~ 무서워 죽는 줄 알았네.”
“뭐가 무섭노? 재미만 있는데. 한번 더 타면 안되나?”
물론 한 번 더 타는 건 안됐다.
섬에서 다시 배를 타고 파타야로 돌아오는 길, 패러세일링 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엄마가 말씀하셨다.
“우리도 저거 타봤으면 좋았을낀데.”
“... 응, 엄마. 저거는 광안리 가서 타자.”
호텔로 돌아와 깨끗하게 정돈된 침대 위에 편안하게 누우신 엄마에게 나는 물었다.
“엄마, 여행 오니까 좋나?”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쓴 여행, 엄마는 완전 만족하고 계시겠지?'
“좋지.”
“뭐가 제일 좋노?”
“밥 안 해도 되고, 청소 안 해도 되니 세상 천국이네.”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비즈니스 클래스 비행기도 아니고, 고급 식당도 아니고, 전신마사지도 아니고 - 밥 안 하고, 청소 안하는게 제일 좋다고? 약간 허탈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도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확실히 알았다. 그런 게 천국처럼 좋은 거면, ‘천국 같은 시간’을 자주 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10년 넘게 해외여행은 한 번밖에 못갔고, 국내 여행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광안리에서 패러세일링은 차치하고 제트스키도 못탔다.
마냥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다짐해 놓고, 약속해 놓고 지키지 못한 것 투성이다.
후회 투성이다.
그래도 이제 엄마는 진짜 천국에서 휴식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