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들과의 여행
_ 엄마친구들과의 여행
여행지에서 ‘어쩌다 공간부자’가 되어. 이럴 때 박여사가 친구 몇 분과 같이 오시면 가이드해드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했더니 넙죽 받으시네요. 그런 마음을 지금까지 몰라드린 것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팔순 노인 여러 분을 모시고 다니는 게 쉽지 않겠다 싶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경우와 비슷하게 어쩌면 친구분들끼리 노실 테니 박여사만 모시고 다니는 것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반반이었는데,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육체적으로는 살짝 더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많이 덜 힘들었습니다!
사오십 년 세월을 봐오신 분들인데, 어찌 그리 할 말들이 많으실까요? 아니 흔히 말하듯 그래서 할 말이 많으신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암튼 놀랍기 그지 없었습니다. 서로에게 별 새로운 이야기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살아계신 또는 이미 돌아간 남편 얘기, 이 아들 저 딸 얘기, 이 손자 저 손녀 얘기, 젊었을 때 여행 갔던 얘기, 공통으로 아는 사람들 얘기만으로도 하루가 짧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 날 눈 뜨시면서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암튼 가이드 중에 발견한 중요한 사실 하나는 박여사가 딸인 나하고만 있으실 때보다 친구분들하고 있으실 때 훨씬 더 펄펄하시다는 겁니다. 물론 자식은 자식대로, 친구는 친구대로 소중한 사회적 관계이고 서로 다른 맥락의 관계이니 일직선 상에 놓고만 관찰하긴 어려운 점이 있지만, 마치 아이들 성장기에 교우관계가 매우 중요하듯 노인의 삶에 있어서도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관계가 있듯, 자식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관계가 있겠지요.
젊은 날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기쁨,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유대, 긴 세월 동안 한편 유사하고 한편 다른 지난 삶의 희노애락을 나누는 즐거움, 어떤 책임감과도 연계되지 않는 기꺼운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대상. 친구라는 존재는 나를 항상 그때 그 시절로 직행하게 하는 마법을 부립니다.
나는 박여사를 위한답시고 모시고 여행을 하지만, 정작 그 당신은 그 시간에 친구분들과 계시는 것이 더 좋으셨을지도요. 하지만 이제 보니 자식도 할 일이 있긴 합니다. 가이드! 이제 당신들끼리만은 여행을 다니실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 모시고 오고 가고 방문할 장소와 식사 장소 등을 섭외하는, 말 그대로 가이드가 필요하니 그 역할은 자식이 해드릴 수 있습니다.
단체관광이 아닌 맞춤형 여행인데다 그분들의 속도에 맞춰 그분들 원하시는 대로 움직여 드리는 꽤 괜찮은 가이드 아니었을까요?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고 하는 여행보다 자식은 뒷바라지를 하고 친구분들하고 여행하실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이 더 좋은 효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음 기회를 만들어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은퇴 후 또 다른 직업의 가능성을 찾은 걸까요? 노인 개별 여행 맞춤 가이드, 해보니 할만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가이드도 퇴근은 해야 합니다. 같은 숙소에서 먹고 자야 했던 것이라면 할만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퇴근시간이 있고, 별도의 잠자리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역시 ‘건강한 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합니다.
+ 박여사님께: 박여사 속도 모르고 박여사 혼자 이리저리 ‘끌고 다닌’ 자식이네요. 그래도 박여사를 위한다고 한 일이니 너그럽게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 당신도 어쩔 땐 친구가 더 좋으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