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엄마와의 어쩌면 마지막 여행 9

엄마의 고향 여행

by 초록의힘

_ 엄마의 고향 여행

꽤 오래전부터 박여사의 고향 동네를 여행하고 싶었습니다. 박여사를 모시고 말입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겐 고향이라는 단어가 썩 익숙하지는 않지만, 고향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떠오르는 향수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기에 어린시절을 보낸 고향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갖고 있는 그분께는 좀 더 의미있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전라도 동쪽 지역은 함께 여행할 기회를 가졌었는데, 어쩌다보니 정작 박여사 고향 동네인 서남지역은 가지 못했었고, 몇 해 겨울을 서귀포에서 지내다 보니 이래저래 기회를 놓쳤었는데, 딱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두 번에 걸쳐 그분의 고향과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젊어서 고향을 떠나셨고 이제는 가까운 친인척, 친구 모두 거의 살지 않는 그곳은 박여사에게도 아련한 기억 속의 장소가 되었지요. 하지만 그 지역에서만 쓰는 말을, 지금은 잊혀진 어떤 단어를 매개로 고향분들 사이에 웃음이 터졌고, 그때 그 상황을 이해하고 같이 웃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화를 돌리시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어릴 때 쓰던 말투를 쓰는 사람들이 사는 곳, 어릴 적 먹던 음식이 있는 곳, 본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런 곳으로의 여행은 아주 낯선 곳으로의 여행과는 사뭇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그런 장소를 갖고 있지 못한 나로서는 박여사를 통해 대리경험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일종의 ‘원형적 장소’에 대한 경험.


떠난 지 70년에 가까워지는 고향마을. 그분의 고향은 바닷가이지만 산촌, 농촌의 성격을 함께 지니고 있는 곳. 바다까지 걸어가기가 쉽지 않았을 아이 시절에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아마 건너건너 듣지 않았을까 합니다. 어린아이 눈에는 꽤 높아 보였을 산들로 둘러싸인 오막한 마을이니 아마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는데 박여사 스스로 바닷가 출신으로 생각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 시절 그 아이에게 세상은 어떻게 인식되었을까 궁금합니다.


박여사가 살던 시절에 훨씬 더 많은 가구가 살았다는 마을은 지금은 아주 작은 규모로 축소되었습니다. 과거 얼마나 활기찬 큰 마을이었는지, 마을 산이 오죽 단정하게 생겼으면 이름이 정산이겠는지, 박여사네 밭이 어디어디었는지, 당신은 뭘 하며 지냈는지 얘기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많이 변한 동네. 살던 집터를 찾기도 쉽지는 않았지요. 드디어 찾은 집터를 기준으로 기억이 재구성됩니다. 여기는 누가 살았고, 저기는 누가 살았고, 어디서 아이들이 뛰어놀았고, 박여사네 밭은 어디에 있었고, 동네사람들은 어찌 살았고, 어디까지 가서 마을제사를 지내고는 했는지...


배우자들은 돌아가신 듯하고 할머니들만 모여 겨울의 망중한을 보내고 계시던 마을회관. 어린 시절의 정애를 기억하는 몇 분이 계셔서 반가운 대화를 나누십니다. 서로를 마지막으로 본 게 스무 살이 되기 전이니 이제 팔순이 넘어 서로를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긴 세월. 먼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며 서로를 확인합니다.


기억은, 이제는 없는 그러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과 사건과 상황들로 이어집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막내딸이라 아버지와 겸상하며 밭일도 안 하는 호사를 누린 일, 재 너머 할아버지댁에 이밥(쌀밥) 먹으러 다니던 일, 눈썰미로 파마하는 방법을 배워 동네에서 ‘야매’(정식이 아닌 방식)로 사람들 머리를 해주고 용돈을 벌던 일, 동네 교회를 문이 닳게 드나들며 한글을 익히던 일, 그분들에게 곡식을 몰래 가져다 드렸던 일, 유난히 잘 생겼던 큰 오빠가 갑작스레 사망하게 되었던 일, 그리고 옆 동네가 고향인 박여사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던 일까지. 동네 구석구석에도 기억이 스며 있습니다. 여기는 친구들과 즐겨 놀던 곳, 여기는 가장 친했던 친구 집, 이 길은 심부름 다니던 길, 이 길은 산을 넘어 학교 가던 길...


어릴 때 알던 사람들, 그 사람들과의 인연, 어린 시절 먹던 음식, 그 시절의 놀이와 장소... 그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박여사는 고향 이야기를 할 때 간혹 고향 언니에게서 배웠다는 일본 오자미 노래를 하십니다. 일본어를 못 하시는데 그건 어떻게 다 외우고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치매에 걸린 분들도 어릴 적 기억은 잘 하신다던데... 뇌에 많은 기억이 쌓이기 전 저장된 기억이라 그럴까요? 그 노랫가락을 들으며 그분의 삶에 새겨진 일제 말기, 해방, 전쟁의 세월, 그 세월의 잔상을 떠올리게 됩니다.


어릴 때 그분의 기억 중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당신이 얼마나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였는지, 그런 아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인정하고 평가해줬는지 하는 겁니다. 그 자부심은 지금껏 생생한 기억이고 당신 삶의 기본자산처럼 보입니다.


기억이 없다면... 그것은 더이상 같은 사람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오랜 존재론적 질문일만큼 기억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 요소입니다. 기억을 잃은 사람은 그 상태로도 존재야 할 수 있겠지만, 어쩌면 별문제 없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본인이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보통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지요. 그 기억이 설사 아프고 괴로운 것이라 주변 누군가가 알려주더라도 말입니다. 왜일까요? 그 사람에게 기억을 찾는 일은 아마 다시 자신이 되는 일이라 믿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기억상실자들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게 너무 괴롭다, 고 하는 말에 숨은 의미 중 하나는 나라는 존재가 결국 기억의 집합체에 다름아니라는 점일 겁니다.


그러니 박여사의 어린시절 기억이 스며있는 장소를 세월을 넘어 자식세대와 함께 찾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생각됩니다. 그 동행은 나에게도 차고 넘치는 의미가 있었기에 다시 한번 그분과 그곳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 박여사님께: 자식이 바라는 것은 어린시절의 회상을 통해 당신이 회고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상을 통해 오늘을 사는 작은 기쁨을 다시 누리는 것입니다. 당신 속의 ‘작은 아이’가 당신의 오늘을 지켜주길 바랍니다.


마음 가는 곳이 고향이라지만 박여사님과 같은 딱 떠오르는 고향의 기억이 없는 자식으로서는 시작을 돌아볼 수 있는 ‘구체적 고향’을 가진 당신이 조금은 부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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