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엄마와의 어쩌면 마지막 여행 10

살얼음판 오키나와 여행

by 초록의힘

_ 살얼음판 오키나와 여행

몸과 마음의 건강과 삶의 질에 날씨가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믿음을 갖게 된 1인으로서 겨울은 덜 춥게, 여름은 덜 덥게 보내는 방법을 늘 궁리 중입니다. 스키도 졸업한지 오래고, 물놀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1년 사시사철 온화한 곳에서 사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노년으로 보내게 될 나로서는 그건 좀 어려운 일이고 계절의 변화가 싫은 것도 아니고 계절이 뒤집히길 바라는 것도 아니어서요. 무튼 그래서 한동안 겨울은 종종 서귀포에서 지내곤 했습니다. 그러다 오키나와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동남아처럼 덥지는 않지만 서귀포보다도 꽤 많이 따뜻하다 해서요. 가족여행지로도 괜찮지 않을까 했습니다.

박여사도 이제 장거리비행은 힘들지 않으실까 싶고, 일본 정도는 괜찮지 않으실까 하여 선택한 오키나와 겨울 여행. 내가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으면, 박여사, 언니와 동생, 조카 한 명이 일부 일정에 동행하는 여정이었습니다. 박여사를 포함한 구성원 모두가 서로 다른 의미에서 ‘환자’여서 처음부터 느슨한 일정을 생각했으나 그래도 여러 가지로 긴장되고 힘들 수밖에 없는 해외여행. ‘환자들의 집합체’임을 감안해 자동차 렌털을 했으나 알려진 대로 일본은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고, 운행방향도 우리와는 반대인데 생각보다 적응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차를 타고 길에 나가면 운전을 하는 언니는 물론이고 모두 얼음. 차가 없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힘들었을테니 좋은 경험했다 생각하려 합니다.


더 힘든 건 물론 관계. 팔순 엄마와 중년 딸 셋이 24시간 함께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찬데, 남의 나라 와서도 폰의 세계를 더 재밌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 큰 조카를 모른 척하는 신공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간이 몇 번씩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렌트카를 반납하고 다행히 여행을 무사히 마무리. 차선 구분도 없는 작은 길에서 앞에서 오는 차를 피하려다 차 바퀴가 길옆 도랑에 살짝 빠지는 바람에 네 사람이 차를 들어올려야 했던 일도 있었으니 정말 다행, 맞습니다!


이제 혼자 앉아 그 여정을 뒤돌아봅니다. 혼자 여행도 어려운데 이 복잡하고 힘든 일을 도대체 왜 하는 걸까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이유들에 살을 붙여 이렇게 말해보고 싶습니다. ‘좋은 데 가서 좋은 것 보면서 맛있는 거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면 여행은 적어도 앞의 세 가지를 거의 자동으로 충족시켜 줍니다. 그러니 여행을 가지 않을 이유가 없고 거기에 즐거운 대화만 추가되면 ‘행복 완성’입니다. 그러니 논리적으로는 ‘친밀공동체와의 여행’은 무조건 좋아야 합니다. 하지만 ‘즐거운 대화’, 그거 하나 채우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족이란 이름으로 엮인 사람들과의 대화는 ‘폭탄’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폭탄이 터질지 알 수 없습니다. 얽히고설킨 시간이 긴 만큼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액면가로 읽히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칡넝쿨 같으니 그걸 푼다는 게 가능할까 싶습니다.(박여사 칠순 때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온 가족이 발리를 가는 계획이 잡혔을 때 속으로는 정말 안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내 전략 중 하나는 가능한 대로 말을 줄이고 가능하면 외면의 신공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이 전략도 늘 성공적이지는 않습니다. 왜 사람 말에 대답을 잘 안 하냐, 왜 무시하냐는 힐책을 받기 쉽습니다.


아니 글쎄 그럼 왜 그런 여행을 하느냐고요? 답은 박여사 말에 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니 친정이 없어지더라. 속으로 그렇겠지요, 끄덕였습니다. 박여사가 안 계시다면... 형제자매들과 여행을 할까?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닐 것 같습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아주 살갑게 지내는 가족들이 있는 것도 알고 조금 부럽기도 하지만 수많은 세월 퇴적된 관계니 그걸 바꾸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가족관계가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한 건 아닙니다. 그저 서로 다른 개체이고 서로 다른 걸 좋아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고, 쌓인 세월만큼 이런저런 퇴적물이 많은 것뿐입니다. 오늘 일어난 한 사건이 오늘 그 사건으로만 인식되지 않고, 그 전, 그 이전과 연결되어 줄렁줄렁 기억의 끈을 잡고 올라오는 것뿐입니다. 형제자매뿐 아니라 오랜 세월 함께 한 부부, 친구들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부부와 친구가 당연히 그러하듯, 한 부모 아래 태어나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형제자매들이 마치 서로 비슷한 사람들인 것처럼 서로를 잘 이해하는 것처럼 아니 꼭 그래야 하는 것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박여사는 동의하지 않으시겠지만요.


살갑게만 보이는 가족을 보면 진짜 속까지 그럴까. 살짝 꼬인 시선으로 쳐다보게도 됩니다. 각기 서로 다른 양태일 뿐, 많은 가족이 서로 다른 고통과 아픔을 품고 있지 않을까, 그게 오히려 ‘정상’이지 않을까 하면서.

하지만 가족지상주의자인 박여사가 아직은 계시고 그분에 대한 자식들의 마음은 하나이기에 그분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본인 말처럼 당신이 안 계시면 좀 다른 국면의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을까요? 우리들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모두 그분과 같은 생각을 하거나 그분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서가 아니라 ‘공개적 반항’이 박여사의 심리적 안녕에 가져올 타격을 우려하는 마음이 하나란 뜻일 겁니다. 그것이 ‘관계의 징글징글한 힘’ 아닐까요?


언젠가 이런 부분을 얘기하는 중에 약간 욱한 상태에서 ‘자식 모두 당신 눈치를 본다’는 눈치 없는 말을 툭 해서 박여사를 상심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눈치를 본다, 는 말이 물론 별로 좋게는 안 들리셨겠지요. 나도 아차,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말은 실상 우리 모두 당신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 당신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우리 서로는 늘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지요.

박여사는 가능하다면 당신 사후의 상황도 통제하고 싶으시겠지만 그건 욕심인걸 당신도 알긴 아실 겁니다. 인정하고 싶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박여사가 계시는 한, 그분에 대한 마음이 구심점이 되는 한, 자식들은 그분을 매개로 동심원을 그리겠지요.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며 무사히 일정을 마쳤습니다.

박여사는 기왕 우측운전 연습했으니 다음엔 호주를 갈까, 하십니다. 가야지요. 비행길이 멀지만 당신만 가실 수 있으시면요. 이 위험천만 여행을 마치고도 타이완 가오슝을 다녀온 걸요. 무사히요.



+ 박여사님께: 쉽지 않은 가족관계에 있는 ‘환자’ 5명이 그래도 함께 비교적 잘 해내지 않았나요? 마음이 들지 않는 구석이야 여전히 많으시겠지만 있는 좋은 점들 먼저 보며 그렇게 지냈으면 합니다. 그래야 다음을 얘기할 수 있을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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