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 엄마와의 어쩌면 마지막 여행 1

여행 후 엄마의 문자, 아마도 내가 이 전쟁 같은 여행을 계속 하는 이유

by 초록의힘


“잘 갔냐? 나는 잘 왔다. 지금 바로 도착했다. 고생 많이 했다. 즐거웠고 아직도 살아있다는 게 기쁘구나. 고맙다”


26년 2월 타이완 가오슝 여행을 마치고 내 어머니 박여사로부터 받은 문자입니다. 막 이제 그만 해야겠다, 더 이상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뒤에 아시게 되겠지만 이분, 결코 칭찬이 넉넉한 분이 아닙니다. 야박한 편에 가깝지요. 그러니 이 문자는 당신으로선 아마 거의 최고의 선의를 보이신 것. 간단한 문자인데 받고 울컥했습니다. 아마 ‘아직도 살아있다는 게 기쁘구나’라는 문장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여행도 쉽지는 않았고 속으로는 아, 이제 정말 더는 못 할 것 같다 싶었는데... 딱 그걸 눈치채고 보내셨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찬을 받고 다음을 기약하지 않으면 나쁜 자식이 되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무튼 정말 감사한 문자였고 아마 내리내리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될 문자가 될 겁니다. 아주 정확하게 내가 쉽지 않음에도 박여사를 모시고 여행을 하려는 이유를 콕 집어 상기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팔순을 넘어 어느덧 구순이 더 가까워진 당신이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사시길 바라는 마음. 평생 난생 처음의 행복을 누리시길 비는 마음. 오늘 처음 가 본 곳이 있으시길, 오늘 처음 먹어 본 음식이 있으시길, 오늘 처음 느껴보는 기쁨이 있으시길 비는 마음.


박여사와의 가오슝 여행을 마치고 혼자 타이페이로 넘어와 며칠 지내다 귀국하기 전날. 꽤 붐비던 지하철 안. 한 할머니가 자리를 찾는 눈치셨습니다. 피곤해 보이셨지요. 마침 내 앞자리가 비었고 넌즈시 알려드렸습니다. 고마워하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자리에 앉으십니다. 내게도 노모가 계십니다. 앉을 자리가 필요하실. 내 어머니에게 자리가 필요할 때 그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분의 자리를 챙겨드렸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는 나는 ‘법칙’, 이런 단어에 썩 익숙하지 않지만 믿는 법칙이 있긴 합니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어디선가 차고 넘치면 어디서는 모자라는 법, 어디서 모자라면 언젠가는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채워지는 법. 내가 베푸는 선의는 바로 내게 되돌아오지는 않더라도 없어지진 않는다고 믿습니다.


눈을 감고 계셨던 할머니는 내가 먼저 내리게 되었을 때 귀신 같이 눈을 뜨시고 옅은 미소를 보내주십니다. 사실 나도 그분을 살짝 쳐다봤더랬지요. 그분의 인생이 대체로 평안하길 속으로 빌었더랬습니다. 그렇게 그분과 무언의 인사를 나누며 서로의 선의를 표현했습니다.


그분을 보며 어쩔 수 없이 나는 내 노모를 떠올립니다. 그분과 내 노모가 끝까지 내내는 아니더라도 대체로 평안하시길, 좋았다, 살아서 행복했다, 그렇게 삶을 마무리하실 수 있길 오래 빌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에 다음이 있길 빌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