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 간의 불공정거래+ '생명이라는 빚'
+ 표시 글은 글쓴이가 박여사에게 보내는 편지글 느낌으로 덧붙인 글입니다.
_ 부모와 자식 간의 불공정거래_ ‘생명이라는 빚’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고들 합니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 반의 반의 반이라도 갚는다면 효자효녀, 라고도 합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한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사실 이런 상황은 생물학적으로도 쉽게 이해될 수 있고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된 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유전자의 전승’이라는 생물학적 이유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설명될 수 있지만, 자식된 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야박하게 보자면 독립하기 이전까지만 생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이겠지요. 부모 공경이 ‘사회적 가치’로 여겨져야만 했던 것은. 그에 반해 자식 사랑이 사회적 가치라는 이름을 통해 인위적으로 강조되었던 사회가 있었던가, 그럴 필요가 있었던가... 들어 본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부모자식 관계는 결코 평등할 수 없습니다. 부모는 기본적으로 ‘약자’입니다. 부모라는 존재가 기본적으로 더 착하고 너그럽고 뭐 그래서가 아니라 관계의 성격 자체가 그렇다는 겁니다. 물리적, 경제적, 정치적... 여러 측면에서 표면적으로는 부모가 강자처럼 보이지만, 더 많이 사랑하고 내어줘야 하는 입장이니 말입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봐도 부모자식 관계는 평등한 관계일 수가 없다는 것이 금방 드러납니다. 생명이 관계의 기본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생명 자체가 돌려주고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생명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 쌍방 간 평등한 계약관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이 부모에게 대들 때 꺼내 드는 마지막 ‘비겁한’ 카드 중 하나가 누가 낳아달라고 그랬냐,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냐, 라는 것이라죠.
말이야 맞는 말입니다. 자식이 낳아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부모 본인들이 원해 가진 자식이니 자식은 태어난 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이고, 밥을 먹어도 변을 봐도 기어 다니기 시작해도, 그것만으로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얘기도 하더군요.
그러니 ‘누가 낳아달라고 했냐’는 말은 자식으로서는 경우에 따라 ‘회심의 카드’일 수 있지만, 부모된 입장에서는 자식에게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소위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자식된 이가 뱉는 저 말이 100% 순도의 진심이라면 모를까, 그러니까 그가 정말 자신의 삶을 전면적으로 부정적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삶에 대한 최소한의 긍정을 하고 있다면, 생명은 선물일 수밖에 없을 테고 그 선물은 부모로부터 온 것입니다. 이런 계산식이 성립되는 순간 180도 다른 각도에서 불공정거래가 일어납니다. 자식은 생명이라는 빚을 부모에게 졌고, 그 빚은 되갚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불평등한 관계입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원해서 이루어진 관계라는 점에서도(한 드라마에서 비혼 상태로 자신을 낳은 엄마에게 왜 낳았냐고 자식이 항변하자, 엄마는 ‘니가 보고 싶어서 그랬어’라고 답하더군요. 감동적인 대사이긴 하나 역시 그이가 일방적으로 원한 관계였다는 점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존재적 양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라는 점에서도 부모는 자식에게 ‘약자’일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부모의 결정에 따른 결과물로서 생명을 부여받은 이가 그 사실에 대한 최소한의 고마움을 갖게 되는 순간 자식은 부모에게 갚을 길 없는 빚을 진 ‘약자’가 됩니다.(아버지에게 간을 기증한 대학원생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도저히 갚을 길 없는 ‘생명빚’을 갚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내신 대단한 분이네요, 부모와 ‘평등한 관계’가 되셨네요, 라는 반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래저래 부모자식 관계는 그 기본 성격상 감정적으로 평온할 수 없는 어렵고 복잡하고 어딘가 계산이 안 맞는 그런 관계입니다. 평온하기만 한 부모자식 관계라면, 그야말로 뭔가 이상한 거 아닌가, 그런 ‘의심’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한’ 부모자식 관계에 대한 고민은 바로 이 지점에 대한 성찰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 이런 거 말고요.
+ 박여사님께: 아마 그래서 부모자식 간에는 어딘가 늘 넘치고 어딘가 늘 모자라나 봅니다. 그건 각자의 성정 문제나 노력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 관계 자체의 성격에서 연유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매번 반복되는 ‘관계 실패의 경험’에 대해 자책하기보다는 부모자식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의 자리를 옮겨보려는 노력이 우선되어야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