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유치한 주도권 싸움
_ 엄마와의 유치한 주도권 싸움
박여사 집에서 보내는 9박 10일과 박여사와 함께 여행지에서 보내는 9박 10일 중에 고르라고 하면 무조건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선택은 손쉽고 분명했지만 그 이유가 뭔지 처음엔 두리뭉실했는데, 하나의 이유는 찾았습니다. 여행지에서 박여사와 내가 보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만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다는 것.
박여사는 자기주도적인 면이 강한 분입니다.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아마 당신이 자식들의 부양을 받고 있다기보다는, 자식들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경제적으로 완전독립된 생활을 하실 뿐 아니라 여직 자식들 김치까지 챙겨 보내주시는 분이니 그리 생각하실만한 이유 충분합니다. 나도 한고집 하는지라 순순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여행지는 그분의 홈그라운드가 아닙니다! 핸디캡이 생기는 거지요. 내게도 여행지가 홈그라운드가 아닌 것은 마찬가지이나 아무래도 자식인 내가 주도권을 가져오기에 유리한 조건입니다. 낯선 곳에서 노모가 조금은 더 자식에게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계속되는 박여사 표 사랑의 잔소리는 여행지에서도 ‘쉼’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나(밀가루 먹지 마라, 옷이 그게 뭐냐, 머리 손질은 안 하냐, 왜 이리 늦게 자냐... 레파토리가 적어도 365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좀 참을만 해집니다.
약간의 핸디캡이 생기는 이런 상황이 박여사에게는 살짝 불편할 수도 있겠으나 여행이라는 즐거움 때문에 감수하시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여행 동안 박여사와 나와의 관계는 그분 집에서보다는 수평적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명백한 ‘끝’이 있는 한정된 시간이기 때문에 그동안 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듯요.
이렇게 특별한 시공간 안에서 평소와는 조금 다른 소통의 기회가 확보됩니다. 이때를 틈타 나는 박여사에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고 좋은 말만 하다 가자’고 세뇌 공작을 하곤 합니다. 물론 자주 실패합니다만...
예를 들어 차를 타고 ‘자, 기도하시고 좋은 곳에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잘 다녀옵시다’, 는 내 기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오십 년 운전을 한 분의 잔소리가 시작됩니다. 운전은 내가 하는데 말입니다. 왜 그리 브레이크를 확 떼느냐, 우회전할 때는 더 천천히 크게 회전해라, 운전하며 너무 해찰부린다(=산만하다는 뜻 같습니다.), 왜 앞차랑 간격을 그리 많이 떼냐... 나도 이래 뵈도 이십 년 운전자이고 면허 딴 지가 삼십 년인데 그리고 박여사를 모실 때는 나름 긴장하고 조심하는데, 별무소용입니다. 기싸움은, 눈 뜨는 순간부터 시작입니다. 그나마 여행지이니 숨 쉴 구멍이 생깁니다.
부모자식 간에 무슨 주도권 싸움이냐고요? 아니오, 세상의 어떤 관계든지 간에 일종의 ‘정치’적인 부분이 없을 수는 없다 생각합니다. 정당 정치, 뭐 이런 것이 아니라 부모자식 관계라 해서 모녀 관계라 해서 진공상태의 순백 관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내가 박여사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겠다, 박여사를 어떻게든 이겨 먹겠다, 이런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아실 겁니다. 모든 관계처럼 부모자식 간에도 관계 주도권 설정의 긴장은 기본 상수인데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관계의 성격이 살짝 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는 취지로 이해 바랍니다. 나도 박여사도 여행지에서는 어느 정도 약자, 이방인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데, 박여사가 조금 더 강도 높게 그런 경험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일인 듯 합니다.
박여사 입장에서 보자면 여행은 이중고입니다. 몸은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고, 주도권도 대폭 이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니 말입니다.(박여사에게도 비장의 카드가 있긴 합니다. 함께 하는 여행기간 동안 대부분의 비용을 박여사가 지불합니다! 가게에 들어가서, ‘엄마! 카드’를 외치면 됩니다. 가끔은 떱뜨름해하시는 것 같긴 하지만 박여사가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 정말 다행입니다. 경제적 독립성은 그분을 지키는 강력한 힘이지요.)
박여사의 모습에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데서 오는 괴리감이 그분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보입니다. 흔쾌히 따라나선 길임에도 금방 피곤해지셔 마음을 바꾸곤 하십니다. 그에 따라 기분도 들쑥날쑥하시지요. 그런 분이 아니셨는데, 찍힌 본인의 얼굴이 보기 싫다며 사진도 찍지 않으려 하십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얹혀 다니는’ 것 같은 상황도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평생 본인 주도적으로 삶을 꾸려온 분이기에 이런 상황이 더 힘들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여든까지 해 온 운전을 더 이상은 못 하게 되었을 때 큰 상실감을 토로하기도 했던 분이니까요.
아이들이 유아기를 지나며 가장 먼저 배워야 하는 일은 스스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화장실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이후 줄곧 보다 독립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받지요.
그러나 어느 날, 서서히 또는 갑자기, 다시 의존적인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때와 직면하게 됩니다. 이 상황은 ‘퇴행’으로 여겨지고 때로는 굴욕적인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리와 함께 하는 화요일’이라는 책에 나오는 루게릭병에 걸린 모리 선생이 누군가 자신의 엉덩이를 깨끗하게 닦아주는 경험을 어릴 때 기저귀 갈던 기분 좋은 경험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은 아무나 저절로 갖게 되는 마음이 아닐 겁니다.
박여사도 조금씩 조금씩, 때로는 갑자기 쿵, 자신이 가지고 있다 믿었던 것들을 ‘내려놓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나는 박여사가 순하게 이런 변화의 과정을 겪어내길 희망합니다. 나도 따라가고 있는 길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노년에 자식과 함께 나서는 여행길이 그 과정의 동반자가 되길 희망합니다.
여행자로서의 경험은 타인에게, 그것이 자식이건 아니건, 열려 있을 것을, 자신을 적어도 어느 정도 내려놓을 것을 요청합니다. 낯선 환경에서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지요. 그런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큰 기쁨과 즐거움 또한 있다는 것을 알게도 해줍니다. 여러 우연적인 요소들과 행운들이 함께 해주고 나의 모름을 채워주는 사람들, 흔쾌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비로소 여행은 완성되어 갑니다.
여행을 ‘작은 삶’이라 말하곤 하는 나는, 늘 다시 떠나고 싶어하는 나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생각합니다. 나는 뭘 봤나, 뭘 경험했나, 뭐가 남았나... 대답은 늘 같습니다. 사람을 봤구나. 작은 뒷골목에서 꽃을 심던 사람을, 자신의 작은 가게를 성실과 웃음으로 채우는 사람을, 내 작은 호의를 더 큰 호의로 되돌려주던 사람을, 낯선 이를 도와주려 애쓰던 사람을... 그들의 크고 작은 선의에 기대 내가 아직 살고 있구나.
인생이라는 여행길에도 모르는 것 투성이고 당황스러운 일 투성이지만, ‘온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도와주리라는 것을, 인생이라는 여행길에 늘 언제나 내가 ‘주인’일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는 것을, 나도 박여사도 우리의 여행 중에 잘 배울 수 있길 빕니다.
+ 박여사님께: 딸이 박여사보다 조금 젊어서 박여사에게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 같아 보이고 ‘잘난 척’하고 있지만, 사실 딸도 당신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조금씩 잘 내려놓으며 살아야 할지 당신과의 동행을 통해 배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