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어릴 적 나의 별명은 거북이였다. 친구들이 토끼처럼 빨리 달려갈 때 나는 언제나 뒤처졌다. 달리기 시합에서, 받아쓰기 시험에서, 심지어 놀이에서도 나는 느렸다. "왜 이렇게 느려?"라는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다. 그 말은 때론 농담처럼, 때로는 한숨처럼 들려왔다. 나는 빠른 것이 좋은 것이고, 느린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토끼가 되려고 애썼다. 더 빨리 생각하고,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빨리 결과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속도를 내면 낼수록 나는 더 많이 넘어졌다. 급하게 내린 판단은 서툴렀고 자주 틀렸다. 토끼처럼 빠르게 달리려고 할수록 나는 오히려 더 느려지는 것만 같았다.
23년을 같은 직장에서 일하며 나는 두 가지 시간을 목격했다. 거북이의 시간과 토끼의 시간. 토끼의 시간은 빠르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고, 빠르게 승진하고, 화려한 결과를 낸다. 토끼의 시간을 달리는 이들은 회의에서 먼저 발언하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상사의 눈에 띈다. 그들의 시간은 촘촘하고 효율적이다.
반면 거북이의 시간은 느리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달라진다. 빠르게 달린 토끼가 지쳐 쉬는 동안, 묵묵히 걸어온 거북이는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몇 년 전 나는 진급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다. 후배들이 나보다 먼저 진급했고, 계급의 차이로 오히려 내가 경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 후배는 빠르게 앞서갔고, 나는 뒤처진 채 스스로 원망했다. 무엇 하나, 앞서지 못하는 나는 느림이 나의 일상이면서도 그것이 싫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거북이의 시간과 토끼의 시간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빠르게 달리는 이들은 길이를 재지만, 느리게 걷는 이들은 깊이를 헤아린다. 빠른 순간을 우선하는가, 나아가는 과정을 우선하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과정을 사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거북이의 시간과 토끼의 시간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더욱 명확해졌다. 빠르게 쓰고 빠르게 나아가는 멋진 작가님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여전히 느리다. 한 문장을 쓰는 데도 오래 걸리고, 한 편의 글을 다듬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빠르게 쓰고 느리게 쓰고, 그것은 속도의 차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성껏 쓴 글이 오래 남는다는 것을. 독자들이 기억하는 것은 얼마나 빨리 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을 담고 있느냐는 사실을.
나는 거북이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아니, 자랑스럽다. 느리게 살면서 나는 더 많이 보고, 더 깊이 느끼고, 더 진실하게 살아가길 노력할 것이다. 빠른 세상에서 느린 걸음은 저항이다. 효율의 시대에 비효율을 택하는 것은 용기다.
토끼의 시간도 필요하다. 때로는 빠르게 결정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토끼의 시간으로 재단되어서는 안 된다. 거북이의 시간도 있어야 한다. 천천히 생각하고, 천천히 사랑하고, 천천히 성장하는 시간.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말한다. 빠른 것이 언제나 좋은 건 아니야. 너희만의 속도로 갔으면 좋겠다고. 세상은 그들에게 빨리 달리라고 재촉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진짜 중요한 것들은 서두를 수 없다는 것을. 사랑도, 우정도, 성장도, 모두 거북이의 시간 안에서 더 빛난다.
무엇보다 거북이의 시간이 좋은 이유는, 토끼는 멈춰 쉬지만, 거북이는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는 것, 그 지속의 힘 때문이다.
당신이 지속하는 일. 그것은 무엇인가요?
지속할 수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거북이의 시간과 토끼의 시간 그 모든 게 필요한 사람일지 모릅니다.
그때 상황과 시기에 맞게 선택할 줄 아는 것이 가장 현명한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