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24년째 직업군인으로 복무 중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대단하세요"라고 말하거나 "힘들거나 답답하지는 않으세요?"라며 의아해한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결코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었던 느림. 친구들이 먼저 달려가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거북이냐! 빨리 와!" 친구들의 재촉 섞인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그때는 느리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남들과 같은 속도로 달리지 못하는 내가 무능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깨달았다. 느리다는 것과 뒤처진다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뒤처진다는 말에는 '같은 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갈 때에만 앞서거니 뒤처지거니 하는 말이 의미를 가진다. 내가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그것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선택을 한 것뿐이다.
우리 사회는 하나의 레일을 깔아놓고 모두에게 그 위를 달리라고 요구한다. 좋은 대학, 좋은 취업, 좋은 집, 높은 연봉. 그 레일 위에서 빨리 달리는 사람은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천천히 가는 사람은 낙오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모두가 같은 길을 가야만 하는 걸까?
23년간 직업군인으로 한 부대 안에 머물렀지만, 그 안에서 수없이 많은 길을 걸었다. 기술의 변화를 따라가며 새로운 것을 배웠고, 용사들을 이끌며 리더십을 키웠으며,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성장했다. 남들이 보기엔 같은 자리였지만,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다른 풍경이었다. 전출과 진급이라는 모두가 희망하는 빠른 길보다, 나는 내면의 깊이를 더하는 길을 선택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 다른 속도로 자란다. 한 아이가 먼저 걷는다고 더 훌륭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부모로서 내가 할 일은 그들을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길을 찾도록 지켜보는 것이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이 깨달음은 더욱 선명해졌다. 백일 글쓰기를 여러 번 하면서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매번 다른 내면의 나를 만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고, 백 일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쓰지도, 좋은 글을 쓰지도 못하지만, 천천히 내 안의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 이것이 뒤처지는 것일까? 아니다. 나는 단지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뒤처진다는 불안은 비교에서 온다. 남의 인생을 기준으로 내 삶을 재단할 때 나는 항상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각자의 길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불안은 사라진다. 나는 나의 속도로, 나의 방식으로 나만의 목적지를 향해 간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산골 소년으로 자랐던 어린 시절, 자연의 속도를 떠올려 본다. 나무는 천천히 자라지만 결국 숲을 이룬다. 강물은 돌아가지만 결국 바다에 닿는다. 급하게 자란 것은 쉽게 부러지고 빠르게 흐르는 물은 깊이가 없다. 자연은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이룬다.
이제는 안다. 거북이라는 별명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는 것을. 나는 느림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로 했다. 나는 뒤처진 것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나는 진짜 나를 만난다.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내 내면의 소리를 따라 걷는 이 길에서, 나는 비로소 자유롭다.
스스로 뒤처진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나요?
뒤처짐이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빠를 수도 있고 느릴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마음이 말하는 대로 나아가고 있는가가 아닐까 싶어요. 그 일이 어렵기에 저도 여전히 반복 연습과 훈련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