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나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 고한이라는 곳이다. 현재는 카지노가 들어섰고 여러 가지로 변했지만 어릴 적만 해도 한적한 산골 마을이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자연에는 재촉할 수 없는 고유의 리듬이 있다는 것이었다. 계절의 변화가, 해가 뜨고 지는 것이, 하루를 정하던 시간이 지금의 나만의 리듬이, 속도가 중요하다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작은 텃밭에 상추며 고추며 씨앗을 심고서 빨리 싹이 나오기를 조바심 내던 나. 그런 나에게 옆집 할아버지가 해주셨던 말씀은 아직도 기억난다. "씨앗은 제때가 되면 나온다. 뿌리 내릴 시간이 필요한 거야."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씨앗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땅의 온기를 느끼고, 물을 머금고 어둠 속에서 천천히 힘을 키웠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연두색 새싹이 흙을 밀고 올라왔다.
여름이면 개울가에 물고기를 잡으러 다녔다. 처음엔 첨벙거리며 허탕을 치기만 했다. 물고기들은 내 그림자만 봐도 후다닥 도망쳤다. 동네 형이 가르쳐주었다. "가만히 서 있어봐. 한참 동안." 처음엔 견딜 수 없을 만큼 지루했다. 하지만 조금씩 움직임을 멈추자, 물고기들이 다시 나타났다. 내가 돌처럼 고요해졌을 때 비로소 경계를 풀었다. 물고기는 고요함 안에서만 자신을 드러냈다.
가을은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감나무 아래서 떨어지는 홍시를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흔들어서 따면 되잖아?"하고 물었을 때 옆집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홍시는 때가 되면 저절로 떨어진다. 억지로 따면 떫어서 못 먹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때가 되기 전에 딴 감은 한 입 깨물었을 때 나를 찌푸리게 했지만, 저절로 떨어진 홍시는 달콤했다. 익어가는 시간을 견뎌야만 맛볼 수 있는 달콤하고 깊은 맛이었다.
겨울은 기다림의 계절이었다. 눈 덮인 산은 죽은 듯 고요했다. 하지만 나무들은 쉬고 있는 게 아니라 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라는 걸 배웠다. 겉으로 보이는 건 정지 상태 같지만, 사실 내면의 깊은 준비 과정이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뿌리를 더욱 깊이 내렸고 그 힘으로 봄에 새 생명을 피워낼 준비를 했다.
성인이 되면서 나는 자연이 가르쳐준 것들을 잊고 살았다. 빠름이 곧 능력이고, 앞서가는 것만이 성공이라는 세상의 속도에 맞추려 애썼다. 스스로 지친 것도 살피지 못한 채 끊임없이 달려 나가려고만 했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살피지도 않은 채.
어느새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랄 때 나는 조급했다. 다른 아이들은 걷고 말하는데 우리 아이만 느리다고 느꼈다. 마냥 느려서 거북이라고 놀림 받던 나의 별명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는 걱정한 것과 다르게 제때가 되자 걷고 뛰었고 말했다. 씨앗이 그랬듯이 아이도 자기만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느림은 부족함이 아니라 자연의 속도라고 산골 소년이었던 내가 자연을 통해 배운 지혜였는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제때가 있다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성장이 가장 단단하다는 것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시 천천히 살아가는 법,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법을 연습한다. 특히 글쓰기를 하며 매일 나를 조금씩 들여다본다. 씨앗이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듯, 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물고기를 기다리며 배운 고요함으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때가 무르익기를 참고 기다려본다. 추운 겨울의 나무처럼 멈춰 있는 것 같은 순간에도 내면을 돌아보고 가꾸려 노력해 본다.
자연은 결코, 서두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이룬다. 산골에서 배운 이 진리를 이제 나는 내 삶의 원칙으로 삼는다. 나는 이제 안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내 속도, 멀리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제대로 가는 것. 자연의 속도로, 나만의 속도로 나는 오늘도 한 걸음씩 내 길을 간다.
스스로 기다림 끝에 얻었던 것을 떠올려 보기로 해요. 고요함이 주었던 것을 생각해 보기로 해요. 나만 정지해 있는 것 같았던 적은 언제였나요? 우리가 스스로 의심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 다른 마음을 품지 않는 한 분명히 성장하고 있음을 믿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