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23년을 지나, 24년째 군대 생활에 접어들었다.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무엇보다 '희노애락'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군대 생활을 시작한 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걸 잊고서 원망과 분노, 미움으로만 가득 찼던 시간이 있었다. 초임 하사부터 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는 지금까지도 남들보다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동료들이 척척 해내는 일을 나는 한참이 더 걸렸고, 회의와 사람들 앞에 나설 때마다 움츠러들곤 했다. "왜 나만 이렇게 느린가? 나만 항상 제자리인가?" 자책만이 일상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느리고 모자란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금씩 변했다. 그것이 오히려 나를 지켜주는 방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다 보니 문제의 원인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조금씩 얻어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운용하는 통신장비들은 전시나 평시에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지휘를 위해서, 통제를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천천히 연결하고 통하게 하면서 안정감이 생겨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부대에 필요한 사람으로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과 자신감, 그리고 즐거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한때 선배들이 내게 그랬듯이, 처음이고 모르는 후배들에게 모질게 군 적도 있었다. 내가 처음이고 몰랐을 때를 잊고서 왜 배우려 하지 않는지를 탓하고, 문제 해결을 빠르게 못 한다는 것을 혼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계급과 경험에 대한 자만에 빠졌던 것이었다. 용사와 후배들을 이끌면서 나 자신이 책임과 함께 배우고 성장해야 함을 망각한 교만함이었음을 깨달았다.
후배와 용사들을 대하며 배웠다. 성급하게 지시하지 않아야 함을,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듣고 문제의 원인을 함께 천천히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떤 상황에서는 즉각적인 해결이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 서두름이 오히려 일을 꼬이게 만든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다. 함께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해 나가기를 노력하며, 협력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
군대는 빠름을 요구하는 곳처럼 보인다. 명령은 즉각 수행되어야 하고, 작전은 신속하게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23년의 군대 생활에서 깨달은 건 진짜 군대가 요구하는 건 빠름이 아니라 정확함이라는 것이다. 백 번 빨리하다가 한 번 실수하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한 번에 제대로 하는 것이 더 가치 있다. 빠른 결정이 중요한 순간도 있지만, 그 결정의 근거가 되는 정보와 시스템은 느리고 꼼꼼하게 만들어져야 함을 느낄 수 있었다.
느린 것과 꼼꼼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나는 느린 게 아니라 신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둔한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3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가르쳐준 나만의 리듬은 꾸준히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나만의 속도였다. 빠르게 나아가다 지쳐 멈추거나 쓰러지는 게 아닌, 여전히 내 속도로 묵묵히 걸어가는 것.
부대에서도 가정에서도 "빨리빨리"를 외치는 대신, 나는 각자의 리듬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배운다. 느리게 밥을 먹어도 괜찮고, 천천히 준비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내가 되기로 했다. 모두가 빠름을 요구할지라도 나만은 진짜 중요한 건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는 용기라고 가르치고 싶다.
23년의 군대 생활이 내게 선물한 건 계급장도 경력도 아니다. 그것은 나만의 리듬을 발견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멈추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삶. 그것이 내가 찾은 나만의 리듬이다. 느림 속에서도 깊이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 군대 생활에 나는 진심으로 감사한다.
일이 삶의 전부가 되어 있지는 않나요? 일은 삶의 일부이자 도구일 뿐임을 기억하기로 해요. 배움의 도구. 일을 하며 배운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세요. 분명히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을 경험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을 거예요. 일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 나, 그대,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리듬을 찾아보고 그 리듬을 온전히 느껴보길 응원해요. 나 또한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