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찾는 느린 거북이의 눈

나는 거북이

by jooni

100일 글쓰기를 여러 차례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100일을 쓴 적도 있고, 이런저런 핑계로 매일 쓰지는 못했지만 100개의 글을 채운 적도 있다. 물론 잘 쓰거나 좋은 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썼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칭찬한다. 후배가 묻는다. "매일 뭘 그렇게 쓸 게 있습니까?" 여러 번 100일 글쓰기를 하다 보니 이 질문은 익숙하다. "글감"이 없다고 수도 없이 머뭇거리고 한탄했던 내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글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편이다. 글감은 찾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다는 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다. 존재하지만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제대로 보는 것, 보이는 것의 너머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느림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은 건 더 자세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린 시간은 내게 관찰하는 눈을 선물해 주었다. 매일 같은 풍경이지만, 어제와 오늘의 하늘이 다르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들의 표정이 있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내게 글감이 된다.


천천히 걸으며 콘크리트 사이를 뚫고 나온 민들레 한 송이에 한참 시선을 두기도 하고,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돌담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옆집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힘들게 일구시던 텃밭, 그 텃밭에서 자란 채소들도 그려진다. 빠르게 지나쳤다면 놓쳤을 기억들이 하나씩 깨어난다. 그 기억들이 글이 되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누군가는 한 달 안에 책을 한 권 쓴다고 한다. 나는 절대 따라갈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매일 써보려고 연습하는 건 그를 따라가기 위한 게 아니라 나만의 시선, 나만의 눈, 나만의 글감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나무가 나이테를 만들 듯 나의 글을 켜켜이 쌓아가고 싶다.


글감을 아이들에게도 배운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느리다. 길을 가다 멈춰 서서 개미를 한참 들여다본다. 그 눈에서 읽을 수 있는 호기심.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휘둘리며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아이들이 발견하는 작은 세계가 내 글감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한다.


글을 빨리 잘 쓰고 싶은 마음보다 천천히 관찰하고, 천천히 되새기고, 천천히 써 내려가고 싶다. 빠름의 강요에서 벗어나 느려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끊임없이 관찰하고, 좋은 글감으로 좋은 글을 써 내려가고 싶다.


글감을 찾는다는 것은 결국 삶을 찾는 것이 아닐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음미하는 여정. 나는 오늘도 거북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쓸 한 문장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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