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거북이는 토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빛나는 삶, 멋진 삶을 그저 바라보고 부러워하기만 했다. 나 자신은 그런 삶을 살려는 노력도, 행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며, '환경과 배경이 다르다'는 핑계만 찾았다.
서점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열대에 꽂힌 책들, 저자 소개란에 적힌 화려한 이력들.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작가, 유명 문학상을 받은 작가,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작가. 그들의 문장은 세련되고, 생각은 깊이가 있었다. 나는 그저 감탄하며 책장을 넘겼다. '역시 다르구나. 나는 저렇게 될 수 없어.' 책을 덮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SNS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했다. 누군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대학원에 다니고, 외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그들의 일상은 빛났다. 계획적이고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다. 나는 그저 '좋아요'를 누르고, 부러워하고, 내 일상으로 돌아왔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으니까.' '나는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 '나는 이미 나이가 많으니까.' 핑계는 늘 준비되어 있었다. 그 핑계들은 그럴듯했다. 실제로 환경과 배경은 달랐으니까.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핑계 뒤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시작했다가 실패하면 어쩌나. 노력했는데 안 되면 어쩌나. 그 두려움이 나를 제자리에 묶어두었다. 시작도 전에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스스로 한계를 규정해 버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작은 서점에서 한 작가의 북토크에 참석했다. 그는 마흔이 넘어 첫 책을 냈다고 했다. 전업 작가도 아니었다.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저녁과 주말에 틈틈이 글을 썼다고 했다. 그의 글은 거창하지 않았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 평범한 사람의 고민과 깨달음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심이 있었다.
"저도 오랫동안 제가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문학상을 받은 적도 없고, 유명한 작가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게 시작이라는 것을요." 그의 말이 가슴에 꽂혔다. 나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느림의 가치에 대해, 거북이처럼 살아가는 삶에 대해, 조급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에 대해. 그런데 나는 왜 남들과 비교하며 시작도 하지 않았던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했다. 내가 부러워했던 '빛나는 삶'이 정말 무엇이었을까. 화려한 이력? 많은 사람의 인정? 아니었다.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나답게 사는 삶이었다. 내 속도로, 내 방식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 그것이 내게는 빛나는 삶이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빛나는 삶이 무엇인지 먼저 구체적으로 정하자. 막연하게 '멋진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모습을 분명히 하자. 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이야기를, 내 철학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는 문장들을 쓰고 싶다. 언젠가 한 권의 책으로 엮고 싶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먼 여정이고 불가능해 보여도, 하나씩 해야 할 일을 해보자.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자. 100일 글쓰기 챌린지처럼, 작은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해보자. 완벽한 문장이 아니어도 괜찮다. 서툴러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이다. 거북이처럼 느려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 계단씩 오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길 위에는 하루하루 쓴 글들이, 작은 시도들이, 넘어지고 일어선 흔적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 빛나는 삶의 증거가 될 것이다.
남과 비교하지 말자. 누군가의 속도에 조급해하지 말자. 나는 나의 속도로 간다. 거북이는 토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자기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간다. 그리고 결국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