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하루를 마치는 시간, 잠들기 전이면 늘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 오늘 하지 못한 일들, 누군가에게 받은 실망, 스스로 해내지 못한 것들. 그 모든 것이 무거운 한숨이 되어 흩어지듯 사라졌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남는 건 허탈함뿐이었다.
그렇게 매일 후회 속에 파묻혀 내일을 겁냈다. 과연 내일은 잘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답을 구하는 질문이 아니라 끝없이 맴도는 의심이었다.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또 하루를 잘 살아낼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늦은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나를 보았는지, 자다 깨어 화장실에 가던 아들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빠 안 자? 내일은 그냥 내일 생각해. 안 자고 생각해 봐야 안 달라져." 초등학생 아들이 나보다 현명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래, 내일을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루를 보내며 늘 만족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본다. 그건 욕심이었다. 오늘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문득 한 문장이 떠올랐다. '내가 보낸 하루는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시간이다.' 그랬다.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해내지 못한 일,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심으로만 하루를 채우고 있었으니.
아들의 한마디가 깨닫게 해주었다. 완벽할 수 없는데도 완벽한 하루만을 꿈꿔왔다는 것을. 욕심이 클수록 실망과 허탈감도 크다는 것을. 어쩌면 애초에 완벽이란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하기에 노력하고, 하루하루를 살아냄으로써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일 뿐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나름 괜찮은 하루였음을 느낀다. 하루를 무탈하게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칭찬하고 기뻐할 이유는 충분하다. 부족해도, 해내지 못한 것이 많아도 괜찮다. 다시 할 수 있는 내일이 있고, 오늘을 살아냈기에, 경험했기에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다.
후회로 가득 찬 하루여도 괜찮다. 그 후회를 만회할 수 있는 내일이 있다. 아프고 지친 하루였어도 괜찮다.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내일이 있으니까. 완벽하지 않아도, 그저 오늘을 살아냈다는 것, 숨 쉬고 있다는 것,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괜찮은 하루였음을 알려주는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다만 욕심에 가려 보지 못했을 뿐이다.
욕심으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말자. 오늘은 분명히, 괜찮은 하루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