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느린 삶을 살아간다고 느끼는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였다. 과거를 다시 들여다보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일.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어린 시절, 원망만이 가득했던 나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버지는 늘 엄하셨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저 무서운 사람이었다. 피하고 싶은 존재. 술을 드신 날이면 우리는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내가 숨는 동안, 아버지의 모든 분노와 폭력을 어머니가 홀로 감당해야 했다. 왜 나는 어머니 곁에 서지 못했을까. 버티고 또 버티다 결국 집을 떠난 어머니를 나는 오랫동안 원망하고 미워하기만 했다. 매일 술에 취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피해, 결국 나 역시도 원망을 안고 그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내 마음속에는 커다란 원망과 미움이 웅크리고 있었다. 한 번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 어머니가 더욱 미웠고, 그토록 무섭던 아버지는 결국 술로 건강을 잃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끝까지 나를 힘들게 만든다는 생각에 원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차라리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삶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 번도 궁금해한 적 없는,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이야기. 그 무뚝뚝함과 거친 표면 아래 감추어져 있던 삶의 무게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사실상 버림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와의 결혼을 집안에서 극구 반대했고,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면서 친척들과는 더욱 멀어졌다. 월남전 파병, 사우디아라비아 해외 건설 파견 등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인의 사기로 남은 것마저 모두 잃었다고 했다. 그래도 일자리를 구하고 가정을 지키려 애를 썼으나,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고 늘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유일한 친구가 술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삶을 얼마나 알고 있었던가. 아니, 알려고나 했었는가. 그저 원망과 미움의 눈으로만 바라보았다. 아버지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누구보다 먼저 가장의 무게를 알아주고 응원해 주는 자녀였다면, 아버지의 방황은 조금이라도 달랐을지 모른다. 원망과 미움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떠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살아생전 감사하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아들을 아버지는 얼마나 서운해하셨을까. 어쩌면 가장 원망스러운 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삶을 더듬어 해석하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어머니에게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미움 때문에 찾지 않았던 그 오랜 시간이 부끄러웠다. 수소문 끝에 알게 된 사실은, 어머니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었다. 그 죽음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현실이, 가슴 깊은 곳을 아프게 했다.
앞만 보고 살았다. 원망과 미움에 가려,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며 갈팡질팡하고 있듯이, 나의 부모님도 그러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천천히 그분들의 삶을 알아가려는 노력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다시 해석할 수는 있다. 이해하고,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일. 그리고 혼자가 아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를 함께 보듬는 일. 과거를 다시 읽는 이유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 그것은 과거에 발목 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삶이 아니다. 천천히, 깊은 시선으로 지나온 날들을 해석하고 이해하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 한 걸음씩 내딛는 삶이다. 나는 오늘, 그 한 걸음을 떼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