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북이
내가 일하는 곳은 규칙과 규율이 우선되는 곳이다. 명령과 지시, 복종과 행동이 기본 언어인 집단. 그 안에서 좋은 점도 많지만, 아픈 점도 적지 않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계급과 직책이 생기면서 의무와 책임도 함께 따라왔다. 맡은 임무를 완수하는 것, 그것이 곧 나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나는 이상한 공허함을 느꼈다. 분명히 일을 하고 있는데 무언가 빠져 있었다. 그 빠진 것이 무엇인지 한참을 들여다보고서야 알았다. 바로 '나'였다.
모든 일에서 나를 지우는 순간, 그 일은 목적도 목표도 잃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내가 바로 서지 못한 채 진행되는 일, 나를 지우고 행하는 일은 그만큼 의미도 중요함도 잃어버린다. 그렇게 나를 지운 자리에는 배움도 성장도 없었다. 그저 원망과 미움, 그리고 무언가를 탓하는 마음만이 가득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세상의 빠른 흐름을 따라가느라 바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시선에 맞추느라 정작 나 자신을 빼놓고 있었다. 조직 안에서는 더욱 그랬다. 지시를 받으면 수행하고, 평가를 받으면 수긍하고,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희미해져 있었다. 위치가 주는 의무와 책임 뒤에 정작 가장 중요한 것, 내가 무엇을 하려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가 묻혀버리는 것이다.
나를 포함하는 일, 나를 세우는 일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은 느리고 지난한 시간을 버텨야 하는 과정이었다. 빠른 것을 좇다가 놓쳐버린 것들이 있었고, 그 놓친 것들 중에 내가 있었다. 삶의 중요한 결정과 시간에는 반드시 내가 존재해야 한다. 내가 없이 하는 어떤 선택도 그것은 온전한 선택이라 할 수 없다. 내가 있어야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배우고, 조금씩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느리다. 언제나 그랬다. 하지만 느리기 때문에 발견하는 것들이 있다. 빠르게 지나쳤다면 보지 못했을 것들, 서두르느라 밟고 지나쳤을 것들을 나는 천천히 걸으며 줍는다. 내가 일하는 곳, 아니 내가 숨 쉬는 모든 곳에서 책임과 의무 너머의 무언가를 찾게 된다. 내 존재의 가치, 내가 살아가는 이유. 그것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느림은 뒤처짐이 아니다. 나에게 느림은 나를 잃지 않는 속도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흘러도, 그 흐름 속에서 내가 사라지지 않을 만큼의 속도.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일터에서, 오랜 시간을 돌아 비로소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