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오래된 수첩을 정리하다가 짧은 메모 하나를 발견했다. 날짜와 함께 적혀 있던 한 줄. "아이가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렀다." 그 글씨를 보는 순간, 그날의 공기가 되살아났다. 어디에 있었는지, 아이의 표정이 어땠는지, 그 한마디를 듣고 내가 얼마나 멍하니 서 있었는지. 기억 속에서는 이미 희미해진 장면이, 메모 한 줄을 만나자 선명하게 돌아왔다. 기록이 기억을 살려 낸 순간이었다.
기억은 스스로를 과신한다. 이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거라고, 이 감정을 평생 간직할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기억은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아무리 강렬했던 순간도 한 달이면 윤곽이 흐려지고, 일 년이면 다른 기억과 뒤섞이고, 몇 년이 지나면 있었는지조차 가물거린다. 기억은 저장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떠올릴 때마다 현재의 감정이 덧칠되고, 사실과 해석이 뒤엉킨다. 기억 속의 과거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다.
기록은 다르다. 기록은 변하지 않는다. 그날의 내가, 그날의 언어로, 그날의 감정 그대로 남긴 흔적.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 문장은 처음 쓰인 그대로 거기 있다. 기억이 계속 고쳐 쓰는 초고라면, 기록은 그날의 최종본이다. 몇 년 전에 쓴 일기를 다시 읽으면,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른 내가 거기 있을 때가 있다. 그때는 이런 것에 마음을 쓰고 있었구나. 이런 것이 좋았고, 이런 것이 아팠구나. 기록이 아니었다면 영영 만나지 못했을 과거의 내가, 글 위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군 생활 이십여 년 동안, 나는 수많은 순간을 겪었다. GOP 철책 위로 떠오르던 새벽의 빛, 무전기 너머로 들려오던 긴박한 목소리, 후임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건넸을 때의 어색함. 그 순간들은 분명히 내 삶이었는데, 기록하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잊혔다. 반면 짧게라도 적어 둔 것들은, 수첩을 펼치는 것만으로 그 시절의 내가 되살아난다. 기록한 삶과 기록하지 않은 삶 사이에는, 존재와 부재만큼의 거리가 있다.
사람들은 특별한 순간만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정작 소중한 것은 평범한 날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이와 저녁을 먹으며 나눈 별것 없는 대화, 비 오는 날 창밖을 보며 마신 커피 한 잔의 온기, 퇴근길에 문득 고개를 든 하늘의 색. 그때는 너무 평범해서 기록하지 않았던 것들이,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된 뒤에야 그리워진다.
기억은 흐르고, 변하고, 사라진다. 하지만 기록은 남는다. 오늘의 나를 내일의 내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늘 한 줄을 남겨 두는 것이다. 기록은 기억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아니, 기록만이 진짜로 살아남는다.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는 기억이 아닌 기록으로 남는 삶을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