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순간 생각은 형태를 갖는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마음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뭉툭하고 흐릿한 덩어리.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둘 다인 것 같기도 한 감정. 누군가 어떤 기분이냐고 물으면, 글쎄, 하고 말끝을 흐리게 된다. 느끼고는 있는데 무엇을 느끼는지 모르겠는 상태. 쓰기 전의 생각은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아직 이름이 없다.


펜을 들고 첫 문장을 쓰는 순간, 그 덩어리에 금이 간다. 한 줄을 쓰면 방향이 생기고, 두 줄을 쓰면 윤곽이 드러나고, 한 문단을 지나면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쓰기 전에는 하나로 뭉쳐 있던 것이, 문장 위에서 갈래갈래 풀려 나온다. 슬픔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리움이었고, 화가 난다고 믿었던 것이 알고 보면 서운함이었다. 쓰는 행위가 감정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이고,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이 경험을 처음 의식한 것은 아이에게 화를 낸 어느 날 저녁이었다. 아이가 잠든 뒤, 미안한 마음에 무작정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미안함 아래에 다른 것이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쌓인 피로와 무력감이 가장 만만한 상대에게 터진 것이었다. 그것을 문장으로 꺼내 놓고 나서야, 내가 진짜 무엇에 지쳐 있었는지를 알았다. 쓰지 않았다면 그저 미안한 아빠로만 그날을 덮었을 것이다. 글이 감정의 껍질을 벗겨 준 셈이다.


생각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은 단순히 정리하는 것과 다르다. 정리는 이미 있는 것을 가지런히 놓는 일이지만, 쓰기는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쓰기 전에는 몰랐던 내 마음의 층위가, 문장 하나를 쓸 때마다 하나씩 드러난다. 그래서 한 편의 글을 마치고 나면 묘한 안도감이 찾아온다.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 마음이 가벼워진다. 형태 없는 불안은 무겁지만, 이름이 붙은 불안은 견딜 만하다.


나는 복잡한 마음이 들 때 쓴다. 기쁠 때도 쓰고, 슬플 때도 쓰고, 아무 감정이 없다고 느끼는 날에도 쓴다. 신기한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한 날에도 막상 쓰기 시작하면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이다. 텅 비었다고 믿었던 마음 안에도 하루를 살아낸 흔적은 반드시 남아 있다. 쓰기가 그것을 건져 올려,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내 앞에 놓아 준다.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는 안개이고, 입 밖으로 나오면 바람이고, 글 위에 놓이면 비로소 땅이 된다. 발을 디딜 수 있는 단단한 땅. 쓰는 순간 생각은 형태를 갖고, 형태를 가진 생각만이 내 다음 걸음의 바닥이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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