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고 배웠다. 흘러가는 것이 시간의 본질이고, 그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고. 맞는 말이다. 어제는 돌아오지 않고, 지금 이 순간도 읽는 사이에 과거가 된다. 하지만 정말 시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걸까.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붙잡아 둘 수는 있다는 것을. 글로.
사진도 시간을 담는다. 영상도 순간을 기록한다. 하지만 사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남기고, 영상은 카메라가 향한 방향만 담는다. 그 순간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가슴이 왜 뛰었는지, 바람이 볼을 스칠 때 왜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는지. 그것은 사진에도, 영상에도 담기지 않는다. 오직 글만이 그때의 마음까지 함께 붙잡아 둘 수 있다. 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남기는 유일한 도구이다.
내 고향인 강원도 정선 고한의 산골에서 보낸 어린 시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산은 다른 얼굴을 했다. 봄이면 연둣빛이 산허리를 타고 올라왔고, 여름이면 짙은 초록이 하늘을 가렸고, 가을이면 온 산이 불타는 것 같았고, 겨울이면 세상이 멈춘 듯 고요했다. 그때는 그것이 특별한 줄 몰랐다. 매일 보는 풍경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산을 떠난 뒤, 그 빛깔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기억 속에서는 해마다 조금씩 색이 바래 갔다. 그때 한 줄이라도 적어 두었더라면. 그 후회가 나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만든 출발점이었는지도 모른다.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오래된 기록도 글이었다. 수천 년 전 점토판 위에 새겨진 문자, 파피루스 위에 적힌 이야기, 돌에 새긴 누군가의 마지막 말. 왕의 업적이 아니라, 빚을 갚아 달라는 편지가, 보고 싶다는 연인의 말이, 아이의 안녕을 비는 기도가 남아 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닿은 것은 거창한 역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마음이었다. 글은 그렇게, 시간을 건너뛴다.
거창한 글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 아이와 나눈 대화, 퇴근길에 올려다본 노을의 색, 오랜만에 들른 어머니 집의 냄새. 이런 것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며칠 안에 사라진다. 하지만 한 줄로 남겨 두면, 십 년 뒤에도 그 순간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 글은 타임머신이 아니다. 하지만 글을 읽는 순간, 그때의 내가 되살아나고, 그때의 공기가 돌아오고, 그때의 마음이 다시 뛴다. 시간을 되돌리지는 못해도, 시간 속의 나를 다시 만나게 해 준다.
글은 시간을 붙잡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오늘을 한 줄로 붙잡아 두는 것. 그 한 줄이 시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