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평범한 하루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든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오늘 하루, 특별한 일이 있었느냐고 누군가 물으면 대부분의 날은 고개를 젓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맡은 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아이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잠자리에 든다. 어제와 비슷하고, 내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하루. 이런 날들이 쌓여서 한 해가 되고, 몇 년이 되고, 어느새 인생의 대부분을 채운다. 우리의 삶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평범한 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순간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에 아이가 현관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든 것, 점심을 먹으며 동료가 건넨 농담에 한참을 웃었던 것, 퇴근길에 익숙한 골목을 걸으며 바람이 선선하다고 느낀 것. 겪는 순간에는 아무 의미 없이 스쳐 갔는데, 글로 꺼내 놓으면 그 하나하나가 오늘이라는 날의 무늬가 된다. 기록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무늬가, 기록한 뒤에야 드러난다.

의미란 원래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기록하는 사람과 기록하지 않는 사람의 하루는 다르다. 기록하지 않으면 오늘은 그저 지나간 하루이다. 하지만 기록하면 오늘은 내가 무엇을 느꼈고, 무엇에 마음이 움직였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담고 있는 하루가 된다. 같은 이십사 시간인데, 기록 하나로 그 무게가 달라진다.

군 생활을 하면서 특히 그것을 느꼈다. 매일이 반복이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순서로 점검하고, 같은 자리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그 안에서 특별한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 끝에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똑같아 보이던 날들 사이에 미세한 차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후임의 표정이 어제와 달랐다는 것, 훈련 중에 문득 아이 생각이 났다는 것, 철책 너머 하늘 빛이 유난히 깊었다는 것. 기록하지 않았다면 영영 눈치채지 못했을 것들이, 글 위에서 하나둘 제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하루를 기록하는 일은, 그 하루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단한 일이 없었어도, 오늘 나는 살아 있었고, 느꼈고,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기록할 가치가 충분하다. 화려한 사건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하루를 의미 있게 바라보는 시선이, 삶 전체를 의미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시선은, 기록할 때 비로소 열린다.

오늘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한 줄을 쓰는 순간, 오늘은 더 이상 그냥 지나간 하루가 아니게 된다. 기록은 평범한 하루를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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