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준비는 오지 않는다, 오늘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때마다 나는 준비부터 했다. 좋은 펜을 사고, 마음에 드는 노트를 골랐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었고, 잘 쓰는 사람들의 습관을 조사했다. 조용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때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준비할수록 시작은 멀어졌다. 펜과 노트는 서랍에 쌓여 갔고, 읽은 책은 늘어났지만, 내가 쓴 글은 단 한 줄도 없었다.


준비가 끝나면 시작하겠다는 말은, 들을수록 그럴듯하다. 합리적이고, 신중하고, 책임감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말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끝나는 준비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가 갖춰지면 다른 하나가 부족하고, 그것을 채우면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온다. 완벽한 조건이란 도착하는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뒤로 물러나는 지평선 같은 것이었다. 나는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준비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미루고 있었다.


왜 그토록 준비에 매달렸을까. 솔직히 말하면, 시작이 두려웠다. 준비하는 동안에는 아직 실패하지 않은 상태에 머물 수 있었다. 가능성은 온전히 남아 있고, 부족함은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시작하는 순간 그 안전함은 깨진다. 서투른 내가 보이고, 생각만큼 되지 않는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준비는 실력을 쌓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그 마주함을 늦추기 위한 완충재였다. 하지만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준비 중인 사람으로 남는다. 준비 중인 작가, 준비 중인 기록자, 준비 중인 도전자. 그 수식어는 아무리 오래 달고 있어도 한 줄의 글이 되어 주지 않는다. 쓰는 사람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쓰기 시작하는 것뿐이다. 완벽한 첫 문장이 아니라, 불완전하더라도 존재하는 첫 문장. 그것만이 나를 준비하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옮겨 준다.


나는 결국 어느 날, 아무 준비 없이 시작했다. 좋은 펜도 아니었고, 마음이 차분한 날도 아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피곤했고,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로 어지러웠다. 그 상태 그대로 한 줄을 썼다. 형편없었다. 하지만 그 형편없는 한 줄이, 준비만 하던 수개월보다 나를 더 멀리 데려다주었다. 쓰기 시작한 그날이, 내 글쓰기의 진짜 첫날이었다.


완벽한 준비는 오지 않는다. 기다리면 기다릴수록, 시작은 더 무거워지고 더 멀어진다.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상태 그대로 한 줄을 쓰면, 내일의 내가 이어 쓸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시작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조건이 아니라, 불완전한 용기 하나뿐이다.

작가의 이전글쓰는 사람만이 시간을 넘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