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을 쓰겠다고 결심할 때, 우리는 으레 한 편을 떠올린다. 기승전결이 있고, 주제가 분명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완성된 한 편. 그것을 써내야 글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한 편을 쓸 만큼의 시간이 없으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 한 편을 쓸 만큼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펜을 들지 않는다. 한 편이라는 무게가, 시작 전부터 나를 주저앉힌다. 하지만 돌아보면, 내 글쓰기를 바꿔 준 것은 한 편의 완성이 아니라 한 줄의 시작이었다. 백일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던 날, 나는 한 편을 쓸 자신이 없었다.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한 줄을 썼다. 오늘은 쓸 것이 없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한 줄을 쓰고 나니, 왜 쓸 것이 없다고 느끼는지가 궁금해졌다. 한 줄이 다음 한 줄을 불렀고, 그렇게 몇 줄이 이어지자 어느새 한 문단이 되어 있었다. 한 편을 쓰겠다는 각오로는 시작하지 못했던 글이, 한 줄의 가벼움으로 시작되었다.
한 줄의 힘은 가벼움에 있다. 한 편은 무겁다. 시간도, 에너지도, 각오도 필요하다. 하지만 한 줄은 가볍다. 한 줄쯤이야 쓸 수 있다는 마음, 한 줄이 뭐 대수냐는 마음. 그 가벼움이 시작의 문턱을 낮춰 준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렇게 문턱을 넘고 나면 대부분 한 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줄을 쓰면 다음 한 줄이 따라오고, 두 줄이 되면 세 줄이 자연스럽다. 시작이 어려웠을 뿐, 시작하고 나면 흐름은 저절로 만들어진다. 반대로 한 줄을 쓰지 않으면, 그 가벼운 한 줄의 부재가 점점 무거워진다. 오늘 쓰지 않은 한 줄이 내일의 두 줄을 더 어렵게 만들고, 사흘이 지나면 다시 시작하는 것 자체가 큰 결심이 되어 버린다. 쓰지 않는 관성은 빠르게 굳어진다. 하지만 쓰는 관성도 마찬가지다. 한 줄이 다음 한 줄의 마중물이 되어, 쓰는 흐름은 한 번 시작되면 스스로를 이어 간다.
한 줄이 전부를 바꾼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내 경험이 그것을 증명한다. 처음 한 줄을 쓰던 날의 내가, 백일 뒤에는 매일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한 줄이 없었다면 두 번째 백일도, 세 번째 백일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이 글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한 줄에서 시작되었다.
오늘 한 편을 쓸 수 없어도 괜찮다. 한 줄이면 충분하다. 오늘 느낀 것 하나, 오늘 본 것 하나, 오늘 마음에 걸린 것 하나. 그것을 한 줄로 꺼내 놓는 것. 그 작은 행동이 내일의 나를 다시 펜 앞에 앉게 하고, 결국 한 사람의 글쓰기 전부를 만들어 낸다. 한 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