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잊힌다. 아무리 사랑받은 사람도, 아무리 많은 이에게 기억되는 사람도, 시간이 충분히 지나면 이름조차 남지 않는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떠나고,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결국 떠난다. 이것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 앞에 선 모든 존재의 조건이다. 그 조건 앞에서,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오래 생각했다.
재산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재산은 쓰이면 사라진다. 업적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업적은 더 큰 업적에 가려진다.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이 사람이 무엇을 느끼며 살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사랑했는지는 사진만으로 알 수 없다. 얼굴은 남지만, 마음은 남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사진 속의 그 사람은 낯선 타인이 된다.
글은 다르다. 글은 한 사람이 살아 있었던 방식 그 자체를 남긴다. 무엇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는지, 어떤 밤에 잠들지 못했는지, 무엇이 두려웠고 무엇이 그래도 그를 일으켜 세웠는지.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숨결이 담긴다. 수백 년 전에 쓰인 한 편의 편지를 읽으며,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은 적 없지만, 문장 사이에서 그 목소리가 들린다. 글이 시간을 넘게 해 주는 것은 문장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문장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의 진심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일도, 세상을 바꿀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십 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맡은 일을 해 온 통신병 출신의 군인. 강원도 산골에서 자란 느린 아이. 거북이라는 별명을 부끄러워하다가, 결국 그것을 삶의 이름으로 받아들인 사람.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쓰지 않으면, 이 이야기는 나와 함께 사라진다. 내가 쓰면, 이 이야기는 나보다 오래 남는다.
생각은 쓰기 전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기록은 기억보다 오래 살아남는다고 했고, 쓰는 순간 생각은 형태를 갖는다고 했다. 글은 시간을 붙잡고, 평범한 하루를 의미 있게 만들고, 자기 삶의 관찰자로 살게 하고, 쌓여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되고, 세계가 되고, 증거가 된다고 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끝에 남는 한 문장은 결국 이것이다. 쓰는 사람만이 시간을 넘어 남는다.
거창한 글이 아니어도 된다. 많은 사람에게 읽히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오늘을 살아간 내가, 오늘의 언어로, 오늘의 마음을 한 줄 남겨 두는 것. 그 한 줄이 모여 나라는 사람이 되고, 그 사람이 시간을 넘어 남는다. 느려도 괜찮다. 서툴러도 괜찮다. 멈추지 않고 쓰는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다. 거북이는 끝내 도착하고, 쓰는 사람은 끝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