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이 질문 앞에서 늘 말문이 막혔다. 성실하다, 꾸준하다, 느리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말로 꺼내면 공허했다.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말, 이력서에나 쓸 법한 형용사들. 정작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결은 그런 단어로는 잡히지 않았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일 텐데, 나를 설명하는 일이 이토록 어려웠다.
그동안 쓴 글들을 쭉 읽어 보다가 묘한 경험을 했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 내가 입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내가, 글 속에 이미 설명되어 있었다. 무엇이 나를 멈추게 하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흔들리는지,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한 편 한 편은 단편적인 이야기였지만, 이어 읽으면 하나의 사람이 보였다. 내가 스스로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을, 글이 대신 말해 주고 있었다.
말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 앞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고, 분위기에 맞춰 감정을 조절하고, 기대에 맞는 대답을 골라서 한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려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조절된 말들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된다. 나조차도 어떤 것이 본심이고 어떤 것이 포장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글은 다르다. 적어도 나 혼자 쓰는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고른 말이 아니다. 밤에 혼자 앉아 꺼내 놓는 문장, 아무도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쓴 일기, 쓰고 나서도 부끄러워 감추고 싶었던 솔직한 고백. 그런 글들이 오히려 나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 준다. 꾸미지 않았기 때문에, 남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증거라는 말이 딱딱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단어가 꼭 맞다고 느낀다. 증거란 있었던 일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니까. 이십 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맡은 일을 해온 시간, 느림을 부끄러워하다가 결국 그것을 삶의 방향으로 받아들인 과정, 서투른 문장을 부여잡고 백일 쓰기를 여러 번 하며 이 자리까지 온 발자취. 이 모든 것을 내가 기억으로만 품고 있다면,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고 변할 것이다. 하지만 글로 남아 있으니, 언제든 꺼내어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글은 나를 증명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쓰다 보면, 글이 나를 증명해 준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무엇에 흔들리는 사람인지, 무엇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인지. 스스로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웠던 나라는 존재가, 쌓인 글 위에 조용히 서 있다. 나를 설명하는 가장 정직한 증거. 그것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