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세계가 남는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글을 쓸 때마다 한 편을 완성하는 데 마음을 쏟았다. 이번 글은 잘 써야지, 이번에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문장을 만들어야지. 한 편 한 편에 매달렸고, 한 편이 끝나면 다음 한 편을 걱정했다. 글쓰기란 좋은 글 한 편을 만들어 내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한 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쉽게 무너졌고, 한 편이 잘되면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 눌렸다.

그냥 매일 써보자고 결정하고 지속해서 오래 쓰다 보니, 시선이 달라졌다. 한 편 한 편을 따로 떼어 보면 부족한 글이 많다. 어색한 문장, 덜 여문 생각, 끝맺음이 흐지부지한 글. 하지만 그것들을 모아 놓고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족한 글들 사이로 내가 무엇을 반복해서 생각했는지, 어떤 감정이 계절처럼 돌아왔는지, 무엇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한 편의 완성도가 아니라, 쌓인 전체가 만들어 내는 그림. 그것이 한 사람의 세계였다.

세계라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세계란 누군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방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같은 비를 맞아도 누군가는 귀찮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같은 이별을 겪어도 누군가는 분노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돌아선다. 그 차이가 글에 담길 때, 그것이 곧 그 사람의 세계다. 대단한 사상이나 깊은 철학이 아니어도, 나만의 눈으로 본 세상이 글 위에 쌓이면, 그것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세계가 된다.

나는 느림에 대해 오래 썼다. 거북이라는 별명이 부끄러웠던 시절부터, 그것을 삶의 철학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비교의 고통에 대해 썼고, 멈추지 않는 것의 의미에 대해 썼고, 매일 한 줄을 쓰는 삶에 대해 썼다. 한 편 한 편은 서로 다른 이야기였지만, 모아 놓고 보니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느려도 괜찮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그것이 내 글들이 만들어 낸 세계였고, 그 세계가 곧 나라는 사람이었다.

한 편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쓴 글이 부족해도, 어제 쓴 글이 부끄러워도, 그것들이 모여 만드는 전체는 어느 한 편보다 크다. 퍼즐 한 조각만 보면 아무 의미 없는 형태이지만, 모든 조각이 맞춰지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처럼. 서투른 글도, 덜 여문 글도, 그 자리에서 전체의 일부가 된다. 빠져도 되는 조각은 없다.

한 편에 매달리지 말자. 한 편을 잘 쓰는 것보다, 한 편을 더 쓰는 것이 결국 나를 완성한다. 쌓인 글들이 만들어 내는 세계는, 가장 잘 쓴 한 편보다 언제나 크고 깊다. 오늘 이 한 편도 내 세계의 한 조각이다. 부족해도 좋다. 이 조각이 있어야, 내 세계가 비로소 한 걸음 더 넓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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