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인 글은 결국 한 사람의 목소리가 된다

나는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by jooni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 문장에는 목소리가 없었다. 좋다고 느낀 문장을 따라 쓰고, 멋지다고 생각한 표현을 빌려 왔다. 어떤 날은 누군가처럼 담담하게 쓰려고 했고, 어떤 날은 또 다른 누군가처럼 뜨겁게 쓰려고 했다. 그렇게 쓴 글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읽어보면 어딘가 어색했다.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 문장은 있는데, 나는 없었다.

그때는 그것이 실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 좋은 단어를 알면, 더 세련된 문장 구조를 익히면, 언젠가 나만의 글이 나올 거라고. 하지만 단어를 바꾸고 구조를 다듬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문장은 점점 매끄러워졌지만, 읽을 때마다 이건 내 글이 아니라는 느낌이 떠나지 않았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목소리를 찾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목소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쌓인 글이 만들어 준 것이었다. 백일 글쓰기를 거듭하면서, 처음에는 흉내였던 문장들 사이로 조금씩 내 말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지 않고도 쓸 수 있는 문장이 하나둘 늘어났다. 화려하지 않아도 편안한 문장, 깊지 않지만 솔직한 문장. 그것들이 모이자, 어느 순간 내 글에서 나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쌓인 시간이 알아서 빚어낸 것이다.

목소리란 결국 그 사람이 반복해 온 것들의 총합이다. 어떤 단어를 자주 쓰는지, 어떤 장면에 마음이 가는지, 문장을 어디서 끊고 어디서 이어 가는지. 이런 것들은 의식적으로 만들 수 없다. 쓰고, 쓰고, 또 쓰는 사이에 저절로 몸에 배는 것이다. 마치 오래 걸은 사람에게 자기만의 걸음걸이가 생기듯, 오래 쓴 사람에게 자기만의 문장 리듬이 생긴다. 그것이 목소리다.

내 목소리를 알게 된 순간은 뜻밖에도 조용했다. 어느 날 쓴 글을 읽다가, 이건 나밖에 쓸 수 없는 문장이구나, 하고 느낀 것이다. 대단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겪은 일을, 내가 느낀 대로, 내 말투 그대로 쓴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평범한 문장 안에 나라는 사람이 온전히 들어 있었다. 멋지지 않아도 괜찮았다. 진짜였으니까.

남의 목소리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내 목소리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만 충분히 쌓이기 전에는 들리지 않았을 뿐이다. 글이 쌓이면 문체가 되고, 문체가 쌓이면 목소리가 되고, 목소리가 쌓이면 한 사람이 된다. 오늘 쓰는 이 한 줄도, 내 목소리의 한 조각이다. 아직 들리지 않아도 괜찮다. 쌓이면, 반드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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